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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속의 여론] 한국사회 2030 여성이 스트레스에 가장 취약

입력
2018.07.14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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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사회적 웰빙’ 연구팀-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조사팀 공동기획 

남성보다 여성이, 고령층보다 청년세대일수록, 배우자가 없거나 부양가족이 많은 경우에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남성보다 여성이, 고령층보다 청년세대일수록, 배우자가 없거나 부양가족이 많은 경우에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인 기대수명ㆍ영아사망률 등 

 건강지표 OECD 평균 이상 불구 

 32%만 “건강하다” 주관적 평가 

 “스트레스 체감한 경험 있다” 93% 

 10명 중 3명은 만성 스트레스 

 스트레스 클수록 사회 불신 심화 

 월소득 200만~300만원 미만층 

 700만원 이상 계층보다 2배 취약 

 동거인 없거나 많아도 위험 

 한국사회 웰빙 수준 

보건복지부가 최근 공개한 ‘OECD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18’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객관적인 건강상태는 OECD평균을 웃돌고 있다. 기대수명이 82.4세로 OECD평균(80.8세)보다 길고, 영아사망율은 출생아 1,000명당 2.8명(OECD평균 3.9명)에 그쳤다. 2015년 기준 암 사망률(연령표준화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168.4명으로 OECD평균(201.9명)보다 낮다. 비의료적 건강 결정요인을 보여주는 흡연율이나 주류 소비량, 과체중ㆍ비만 인구비율 등 지표에서도 OECD평균 혹은 그 이상의 위치에 서 있다. 객관적인 건강상태는 괜찮다는 얘기다. 그러나 자신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고 생각하는 15세 이상 인구비율은 32.5%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OECD평균 68.3%를 크게 못 미치는 결과이다.

 사회적 웰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객관적인 건강 상태와 주관적인 건강진단 사이에 갭이 크다. 사람들이 신체건강 만이 아닌 심리건강을 고려하고, 건강을 순수하게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살고 있는 사회의 건강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커진 결과로 보인다. 기존의 의학적 차원의 신체건강 개념을 넘어 신체건강과 심리건강, 개인건강과 사회건강을 함께 고려하는 ‘사회적 웰빙(social well-being)’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대 사회적 웰빙 연구팀(책임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은 2014년부터 사회적 웰빙 지수 개발 및 실증 조사를 통해 사회적 웰빙 상태를 깨는 핵심 요인으로서 특히 사회적 ‘스트레스’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사회적 웰빙 최대 과제는 스트레스 

사회적 스트레스를 얼마나 느끼고 있고,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대 사회적 웰빙 연구팀과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연구팀이 공동으로 지난 5월 19세 이상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웹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최근 일상생활 중에 스트레스를 느끼는 정도’에 대해 ‘대단히 많이 느낀다’는 응답이 6%, ‘많이 느끼는 편이다’ 26%, ‘조금 느끼는 편이다’ 61%,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은 7%였다. 조금이라도 느낀다고 답한 사람까지 합하면 93%가 스트레스를 체감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정부의 정신건강 지표로 활용되는 스트레스 인지율(‘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 느끼는 편’이라고 답한 비율)을 기준으로 10명 중 3명은 스트레스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스트레스 효과는 

스트레스의 누적은 우선 주관적인 건강 인식을 악화 시킨다.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혹은 많이 느낀다고 답한 강한 스트레스 체감층 중 32%가 본인의 건강상태가 좋은 편이라고 답한 반면, 가끔 느낀다고 답한 약한 스트레스 체감층에서는 이 수치가 50%,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스트레스 둔감층에서는 59%로 개선된다. 스트레스는 사회적 위험 노출 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 복원력도 저하시킨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원래 대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비율, 즉 단기적인 복원력을 보여주는 비율이 강한 스트레스 층에서는 27%에 불과하다. 약한 스트레스 체감 층에서는 42%, 스트레스 둔감층에서는 61%로 스트레스가 클수록 복원 속도가 늦어짐을 알 수 있다.

스트레스는 특히 개인의 심리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를 강하게 느끼는 층일수록 최근 일주일 사이에 우울감을 항상 또는 자주 느꼈다는 응답이 32%, 분노에 대해서는 36%에 달했다. 가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한 층에서는 우울감에 대해 5%, 분노감에 대해 8%만이 인정했고,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응답자들은 거의 우울감이나 분노를 체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가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 문제로 되는 것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키우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정직하게 살려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강한 스트레스 체감층의 96%가 동의하고, 약한 스트레스 체감층에서는 89%, 둔감층에서는 76%로 완화된다. 사람들이 남들을 돕기보다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는 대인불신에 대해서도 스트레스에 크게 노출된 층에서는 55%가 동의했지만, 약한 스트레스 체감층에서는 45%, 스트레스 둔감층에서는 41%로 수치가 떨어진다.

 누가 스트레스에 취약한가? 

남성보다 여성이, 고령층보다 청년세대일수록, 배우자가 없거나 부양가족이 많은 경우에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답한 비율이 남성(29%)보다 여성이 높고, 20대(44%), 30대(40%) 등 젊은층에서 높았다. 반면 40대는 중간 수준인 33%, 50대와 60대 이상에서는 각각 22%, 24%로 비슷했다. 주목할 점은 남성과 여성의 스트레스 빈도가 2030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응답이 2030세대 남성에서는 35%에 그친 반면, 2030세대 여성에게서는 49%나 된다. 40대와 5060세대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결국 여성의 스트레스는 청년 여성 사이에 집중된 현상인 셈이다. 최근 혜화동 시위에 6만의 젊은 여성들이 집결한 것은 이들이 느끼고 있는 사회적 스트레스의 분출 과정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적 고립층도 스트레스 취약계층이다. 배우자가 있는 응답자 중에서는 강한 스트레스 체감층이 29%에 불과하지만, 미혼층에서는 33%,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한 층에서는 37%로 높아진다. 가구원수 기준으로 보면 고립된 1인 가구에서 44%로 가장 높았고, 4인 가구 이상에서 35%로 뒤를 이었다. 2인 가구 혹은 3인 가구에서 각각 27%로 가장 낮았다. 동거 가구원이 1,2명 있는 경우에 스트레스 해소가 유리한 반면, 없거나 많으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상위층과 하위층 누가 더 스트레스를 받나? 

건강과 삶의 질에서의 불평등 현상도 간과할 수 없다. 건강 불평등 문제의 대가 영국의 리처드 윌킨슨 교수는 만성 스트레스가 단지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산물임을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일반적 상식과 달리 서열이 높고 의사결정 책임이 큰 고위직이나 성공한 이들이 스트레스에 노출될 확률보다 하위직, 단순 노무직의 사람들이 각종 질병에 더 취약하다는 점이다(안희경 ‘문명, 그 길을 묻다’ 중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소득층, 주관적 하위계층일수록 스트레스에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다. 월 가구소득 기준으로 200만원 미만층에서 45%, 200만~300만원 미만층에서 40%가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답했다. 반면 700만원 이상의 상위층에서는 20% 수준에 불과하다. 주관적 계층의식 기준으로 상위층(225명)에서는 19%, 중간층(414명)에서는 25%만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답했지만, 하위층(360명)에서는 48%가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답했다. 아픈 사회의 극복은 의사 수, 의료체계의 양적 확산이 아닌 사회적 독소의 치유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범정부, 범사회적 대응이 시급하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 전문위원ㆍ구혜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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