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분배는 평등한가?”에 “진하고 선하여 미하라!”로 응답
-소셜 패밀리와 프로슈머가 소비자 유통개혁의 참여경제 주체돼야
지난 2002년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는 의미 있는 보고서 하나를 발표했다. 제목은 『윤리경영이 경쟁력이다』 단행본으로 출판된 이 보고서에는 경제정의기업상을 수상한 10개사의 기업경영 성공사례를 담고 있었다.
이들 기업들의 수상 요인은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 그러나 이것은 번 슈미트(콜롬비아大교수)와 알렉스 시몬슨(조지타운大교수)이 제시한 ‘고객과 회사가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미학적 마케팅’과는 결이 다르다.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의 이익증대를 위한 미학경영’과 ‘윤리경영을 지향하는 이익환원’은 어떤 면에서 상호보완적일 수 있을까?
1. 약자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미학(윤리)경영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생하는 약자(弱者)라면 당연히 돈 없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약자가 되었는가?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강자(强者)들이 흔히 지적하는 습관대로 그들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약자로만 살아야 하는가?”일 것이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은 약자, 그래서 공정한 게임(경쟁)에서 밀려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자포자기해버린 ‘자의적 약자’라면 모를까, 정치 경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발생한 피해자, 즉 ‘타의적 약자’라면 그 책임을 전적으로 그에게만 몰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6.25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병사들이나 민간인들, 또는 1997년의 외환위기(IMF사태)나 2008년의 금융위기(리먼브라더스 사태)에서 실직된 사람들에게 고난의 책임을 모두 지게 할 수 없다는 논리와 같다.
따라서 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약자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마련하려는 것이 윤리경영, 또는 미학경영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본질이다.
대한민국 윤리경영학 박사 제1호라는 지적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필자가 다소 생소한 ‘미학경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2014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현장(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본 다음과 같은 현수막 글귀 때문이다.
“진(進)하고 선(善)하여 미(美)하라!”
필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이 말은 주최 측에서 제시하는 미(美)의 조건인 듯싶다. 필자는 지금도 이 뜻을 “진실하고 착하여 어진 사람이어야 아름답다”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것을 기업경영에 도입시키려는 것이 미학경영이다. 윤리경영의 또 다른 말일 수 있다. 여기서 미학경영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되풀이 하는 것은, 그에 내재된 ‘함께 사는 어울림’의 의미를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약자의 미래를 고민하는 ‘소셜 네트워킹’의 사회적 경제시스템 구축을 찬성하는 뜻에서다.
2. 참여자본주의와 연대경제를 위한 ‘소셜 네트워킹’
한국에서 ‘함께 사는 어울림’의 뿌리는 당연히 홍익인간 정신이다. 하지만 그 근원과 범위가 깊고 넓기 때문에 여기서 홍익인간 사상을 상세히 조명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특별기획시리즈로 ‘새로운 소비경제’를 논하는 이번 원고에서는 ‘함께 사는 어울림’을 위한, 노규수 원작 ‘소셜 네트워킹(Social Networking)’의 뿌리를 연대경제(Solidarity Economy)를 비롯한 참여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에 한정시키려고 한다.
한국에서 연대경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무조건적인 자유경쟁 체제를 강조하는, 그래서 ‘강자(强者)’나 ‘가진 자(haves)’가 유리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에 맞서 약자들이 힘을 합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출발했다.
연대경제론자들이 대안적 시장경제시스템의 조건을 제기하고 나선 것은 약자들 스스로에게 실패의 모든 책임을 돌리려는 강자들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래서 유철규(성공회대 교수)는 2002년 대안연대회의 포럼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사회에 던졌다.
첫째 한국의 소득분배는 평등한가?
둘째 ‘실업(失業)의 공포’와 ‘파괴적 경쟁’등 산업화의 유산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셋째 노동의 동기를 어디에서 재발견할 것인가?
넷째 경제민주화를 위해 어떠한 대안이 모색되고 있는가?
이는 약자들에게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삶의 공간을 제도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강력한 제안이다. 분배의 개념에서 본다면, 소비자 공공의 이익을 우리 사회가 공유하거나 공동 관리하여 ‘나누기’하자는 의견일 것이다.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간 것이 기업 지배구조의 개편이며, 그 대안의 하나가 참여자본주의다.
이는 기업을 주주의 사적 재산으로 보지 않고, 주주와 경영자, 종업원, 채권자, 협력업체, 소비자와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로 구성하는 ‘공동이익의 연합체’로 보려는 시각이다. 따라서 함께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논리다.
3. 혁신에서 창신으로 가는 소셜 네트워킹 소비경제론
2011년 새로운 소비경제의 형태로 등장한 ‘소셜 네트워킹’은 개발자 노규수의 제안대로 ‘가난 없는 사회를 위한 프로슈머(prosumer)들의 연대’를 의미한다. 소비자(consumer)가 소비는 물론 제품개발, 유통과정에까지 직접 참여하는 ‘생산적 소비자’로 전환되어 부를 창출하자는 의미다.
연대의 이념적 틀은 “1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1인을 위하여”로 정했다. 이는 연대경제론자들이 기득권층에 제시한 “한국의 소득분배는 평등한가?” 등 네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이로써 노규수는 ‘소셜 네트워킹’이라는 재화 소비와 이익 분배의 구조적 틀에서 누구나 1등, 누구나 상위 1%에 오를 수 있는 방식을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특허 등록함으로써 ‘함께 사는 어울림’의 유통시스템을 기초했다는 평가를 국내외에서 받고 있다.
이를 필자가 ‘미학경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다시 관찰하려는 의도는 노규수가 ‘가진 자’(거대 자본, 족벌경영)나 ‘아는 자’(정보독점, 학벌주의) 등 상위1% 중심의 독점경제 구조를 소비생활마케팅 시스템을 통해 개혁하려는 시도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결국 노규수가 추진하는 소비자 유통개혁의 주체는 소셜 패밀리(사회적 가족=친지)와 프로슈머(생산적 소비자)가 된다. 소셜 네트워킹은 이들의 연대를 통해 소수가 지배하는 권위주의 경제를 약화시켜 홍익인간 경제로 되돌리려는 시도다.
인간은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1%의 독점적 소수도 자기 자신 만으로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대다수 소비자들과 기업체 근로자들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기도 하다.
임태승(성균관대 교수)은 『미학과 창의경영』(B2刊. 2014)에서 제도의 변화를 1단계 개선(改善)=더 낫게 고치는 것, 2단계 혁신(革新)=새롭게 바꾸는 것, 3단계 창신(創新)=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구분했다.
필자의 견해로 본다면 노규수의 ‘소셜 네트워킹’은 ‘2단계 혁신’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소비경제 이론이 ‘3단계 창신’으로 발전할 것인가는 내부의 역량, 즉 소셜 패밀리와 프로슈머의 역할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임태승 역시 “창신은 자기로부터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기술적 완성’을 기반으로 하여 원래 있던 장르를 합쳐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는 것이 창신의 목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규수가 ‘소셜 네트워킹’이라는 소비경제 혁신프로젝트에서 프로슈머(친지)들에게 과연 “어떤 없는 것, 생각지 못한 것을 있게 하는 것으로 만들어 ‘다름’을 구현하게 할 것”인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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