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사랑하는가
소노 아야코 지음ㆍ홍윤숙 옮김
톨 발행ㆍ196쪽ㆍ1만원
여자 작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과 결혼에 대해 쓴 책이다. 아, 벌써 식상해져 김이 팍팍 샐라 그런다.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어 무성애, 양성애, 다성애, 퀘스처너리(성적 지향이 모호함 사람)를 찍고 ‘폴리가미와 폴리아모리의 차이를 아느냐’고 묻는 이 시대에, 그저 ‘여자 작가가 사랑과 결혼에 대해 썼다’라니. 전통적 연애ㆍ결혼관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그것도 여성으로서 상상력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어야 마땅할 ‘여자 작가’라는 자가 이런 구닥다리 책이나 쓰고 있다니!
‘약간의 거리를 둔다’ 같은 책으로 한국에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한 일본 작가 소노 아야코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유로움과 해방에 대해 말하면 금세 자유로운 성생활이라든가 기성도덕의 파괴 따위를 생각한다. 나도 사실 도덕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자유에는 자신을 규제하는 그 무엇이 당연히 따라야 한다. 즉, 자유롭고 멋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손해를 보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남다른 자신을 인정받는 건, 조급해서는 안 된다. 그만큼의 거리와 여유가 있어야 한다.
신문에다 연애 결혼 상담란을 맡아 운영하면서 이런 말도 한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고독하고 편협하며 나약하다. 불손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우는 동시에 웃으려고 한다. 진심과 현란한 허구가 한데 뒤섞여 있다. 그런 분열적 인간이 어떻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자기 글에서 이렇게 한걸음 물러날 줄 아는 글쟁이는 참된 글쟁이다. 물론 그 또한 자의식의 함정으로 쓰는 경우도 흔하지만.
책은 자잘한 이야기들이다. 땡전 한푼 없던 무명시절 스물둘의 나이로 결혼한 남편 미우라, 책 읽고 글 쓰는 것 말고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던 미우라와 함께 살면서 얻은 사소한 깨달음과 지혜들. 그 지혜는 이렇다. 남편을,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식들에게도 매한가지다. 뭘 남겨주고 물려주는 것보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오래 살며 그저 곁에 있어주는 일”임을.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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