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불시착한 500명 예멘 난민
부당한 혐오와 공포 벗고 보듬어야
한국의 오늘도 국제사회 환대에 빚져
지난 27년 간 내가 썼던 기사들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렀던 것은 콩고 출신 난민 욤비 토나씨 인터뷰였다. 짐작했겠지만 ‘뜨거운’ 반응이란 공감의 환대가 아니었고, 무관심의 다른 이름인 냉대만도 아니었다. 보는 것만으로 눈이 델 듯 격렬한 멸시와 저주, 혐오를 발산하는 수천 개의 댓글을 읽어 내려가다 눈을 감고 말았다. 2013년 1월의 일이다.
토나씨는 6년 만에 난민 인정을 받고 가족과 재결합한 자신은 ‘럭키 맨’이라며 이렇게 호소했다. “난민들이 저처럼 럭키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 바꿔 주세요.” 그러나 대학 교수이자 난민지원 활동가가 된 그는 한국에서 여전히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다. 인터뷰 당시 13%였던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그새 3.5%로 뚝 떨어졌다. 난민 신청자는 늘어난 반면 심사는 까다롭고 더딘 탓이다.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1992년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고, 난민법을 제정해 2013년부터 시행하면서 정부가 “인권국가로서 국제적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던 것을 돌이키면 몹시 부끄러운 현실이다.
그간 난민 얘기를 접한 이들의 첫 반응은 대개 “아, 한국에도 난민이 있어요?”였다. 전쟁과 박해를 피해 목숨 걸고 국경을 넘는 세계 도처 난민들의 비극은 먼 나라의 얘기일 뿐, 누적 신청자 수 3만2,700명을 넘는 ‘우리 곁의 난민’은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제주에 온 500여명의 예멘 난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 동안 우리 곁의 난민 문제에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했던가를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5년 전 댓글 창을 가득 메웠던 멸시와 혐오의 반응은, 나라를 지옥에 빗댈 만큼 팍팍하고 불안한 삶의 조건이 겹쳐지며 더 매몰찬 언어로 들끓고 있다. 멸시와 혐오보다 더 심각한 건 공포다. 대개는 이슬람 문화나 유럽의 난민 범죄에 관한 가짜뉴스 혹은 과장된 정보에서 비롯됐지만, 마음을 덮친 공포심은 전염성이 강해 근거 없다 탓한다고 쉬 사라지지 않는다. 당장 시급한 건 적체된 난민 심사를 빠르게, 제대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턱없이 부족하고 전문성도 떨어지는 심사 인력 보강이 절실하다. 게으른 진실보다 걸음 빠른 거짓 정보를 붙들어 쫓기 위해 언론과 시민사회도 더 애써야 한다.
오로지 살기 위해 고국을 등진 난민들이 몸 누일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찌어찌 해 한국 땅에 불시착한 이들을 무작정 내치는 것은 난민협약 위반이자 세계 시민으로서 윤리적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다. 몰라서 생긴 공포는 탓할 수 없어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치열하게 논쟁하며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태국 치앙라이주 동굴에 고립됐던 유소년 축구팀 선수와 코치 13명이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환호하고 있다. 영국 동굴탐험가들이 이들을 처음 발견했을 때 영어로 또박또박 상황을 알려 극적인 구조 활동을 도운 소년은 난민이었다. 외신에 따르면 미얀마의 소수부족 와(Wa)족 출신인 아둘 삼온(14)은 아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던 부모가 등을 떠밀어 일곱 살 때 홀로 국경을 넘었다. 태국 국경지대 교회와 학교의 돌봄을 받으며 꿈을 키웠다. 이 땅에도 아둘 같은 소년소녀들이 적지 않다. 미얀마 소수민족 친 족 출신으로 열한 살 때 엄마를 따라 한국에 와 어엿한 대학생이 된 캐롤라인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꿈꾼다. “이제까지 어려운 길을 헤쳐 오면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안 받았다면 베풂이란 단어를 몰랐을 거예요.”(문경란, ‘우리 곁의 난민’)
“자기 집 문을 두드리는 모든 사람을 먹여주고 재워 주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한 사회가 그 사회에 도착한 모든 낯선 존재들을 조건 없이 환대하는 것은 가능하다.”(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대한민국의 오늘도 전쟁과 독재정권을 피해 유랑하던 난민들에게 세계 각국이 기꺼이 내어준 자리, 그 지극한 환대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는가.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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