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을 다각도로 회유ㆍ압박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는 11일 민변 송상교 사무총장과 김준우, 최용근 사무차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사찰 피해 여부 등을 조사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2014년 12월 29일 작성한 ‘민변 대응 전략’ 문건을 바탕으로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 추진에 반대한 민변을 실제로 회유ㆍ압박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검찰 조사를 받은 민변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당 문건에는 민변을 압박하기 위한 세부 방안이 담겼다. 특히 민변이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을 대리한다는 점을 노린 ‘빅딜’ 방안,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 등 보수 변호사단체를 통한 압박 전략 등이 검토된 것으로 드러났다. 민변 대의원회가 상고법원에 대한 입장을 변경하도록 하기 위한 방안, 진보진영 내에 상고법원 추진 여론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며 일부 국회의원을 거론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는 당시 민변 사법위원장이자 대한변호사협회 상고심제도개선 테스크포스(TF) 위원으로 상고법원 설립 반대에 앞장 섰던 이재화 변호사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회유 전략을 검토했다. 이 변호사는 “2014년 9월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 참석을 앞두고 안면이 있던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느닷없이 전화해 상고법원이 위헌이라는 얘기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라며 “재판 불이익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변호사 입장에서 심적 압박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가 민변을 조직적으로 사찰하고 감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해당 문건에 보면 법원행정처는 사법정책실을 주무 부서로 삼아, 민변의 조직 현황, 의사결정 방식, 문건 작성 당시 주요 동향을 면밀하게 감시했다. 사법정책실이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담당한 것으로 되어 있어, 법원이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사찰 행위를 벌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민변 측은 “법원행정처가 민변을 조직적으로 사찰하고 감시했을 뿐 아니라, 회유하려는 방안을 다각도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불법성이 현저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민변은 해당 문건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법원행정처는 “공개될 경우 법원 내부 감사 담당기관의 기능과 활동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최근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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