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새 임기를 시작하자마마 사위를 재무장관에 임명했다. 당장 터키 리라화가 하락하고, 경제전문가와 투자자들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9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측근들과 과학기술 전문가, 민간기업가 출신 등으로 구성된 내각을 발표하면서 사위인 베라트 알바라이크(40) 에너지부 장관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다. 2004년 에르도안 대통령 딸과 결혼한 알바라이크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페이스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하고 건설, 에너지 관련 기업인 칼릭 홀딩스 최고경영자를 맡았다가 2015년 의회에 입성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알바라이크가 임명되자 애널리스트들과 해외 투자자들이 터키 경제의 건전성과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알바라이크는 지난달 터키 대선기간 터키 리라화의 약세가 터키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해외 세력의 작전 때문이라고 경고했으나, 투자자들은 경기 과열과 불충분한 고금리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네덜란드 은행 ABN암로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알바라이크의 임명은) 절대적으로 우리가 바라던 바가 아니다”며 “시장 친화적이 아니라 에르도안 친화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외환시장에서 리라화 가치는 장중 한때 3.8% 하락해 달러당 4.7488리라에 거래됐다.
이에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수도 앙카라에서 터키의 첫 ‘대통령중심제’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로써 터키는 공화국 수립 이래 유지된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 특히 대통령의 권한이 유난히 강력한 정부형태를 가리키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전환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취임식에 이어 ‘공화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묘를 찾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우리 공화국과 민주주의의 중요한 전환점을 여는 여명에 제12대 대통령이자 새로운 대통령제 정부의 첫 대통령으로서 단합과 형제애를 고양하고, 나라를 발전시키며 국위를 선양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대통령궁에서 열린 성대한 축하행사에는 ‘반미’ 성향 국가와 ‘형제 나라’ 지도자가 대거 참석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 카타르 에미르(군주)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타니 등이 앙카라를 찾아 각별한 우의를 확인했다. 유럽 지도자로는 의원내각제 국가인 불가리아 대통령 루멘 라데프와 ‘헝가리의 스트롱맨’ 빅토르 오르반 총리만 이 자리에 함께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개헌과 지난달 대선ㆍ총선 승리로 ‘21세기 술탄’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강력한 권한을 거머쥐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법원과 검찰의 수뇌부 인사권을 장악, 사법부를 사실상 자신의 통제 아래 뒀다. 또 새 임기 시작 전날인 8일 군경과 공무원 등 공공부문 종사자 가운데 반정부성향자 1만8,000여명을 단번에 해고하며, 강력한 정국 장악 의지를 드러냈다.
터키 언론은 성향을 불문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날 취임식으로 터키공화국이 과거와 다른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우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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