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계파논란, 선거압승에 취한 듯
선거구 개편 등에 소극적 ‘부자 몸조심’
청와대 눈치만 살피면 지지층부터 외면
2016년 4ㆍ13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와 호남 의원들이 대거 민주당을 탈당했을 때 총선 걱정이 컸지만 차라리 잘됐다는 평도 적지 않았다. 허구한 날 실체도 분명치 않은 ‘친노ㆍ친문 패권주의’를 놓고 싸우느니 깨끗이 갈라서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민주당은 안정을 되찾았고, 이런 분위기는 총선에서 여당을 누르고 원내1당으로 올라서는 발판이 됐다. 반면 ‘진박 공천’ 파동에 휩싸인 새누리당은 예상 밖의 참패를 당했다. 당내 계파싸움이 표심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더불어민주당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둘러싸고 계파갈등이 불거지는 것은 좋지 않은 신호다. 친문 세력화 논란을 부른 ‘부엉이 모임’은 “밥 먹는 것 그만하면 되지 않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과장된 측면은 있으나 국민들은 계파갈등이라는 말만으로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게다가 6ㆍ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지 한 달도 안된 시점이다. 승리에 취해 오만해진 여당이 세 싸움을 하는 것으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동조현상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대통령 지지도가 높아지면 여당은 덩달아 상승하게 마련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꼭 그런 모양새다. 선거 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압승 이유로 ‘민주당이 잘해서’라는 사람은 4.1%에 불과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후광효과’라는 응답은 38.9%나 됐다. 민주당의 소모적 계파논란은 지지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줘 민주당만 아니라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뿐만은 아니겠지만 민주당 지지율이 지방선거 때보다 10%포인트 떨어지고 문 대통령도 동반하락 한 것은 심상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넘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다. 개혁입법은 이뤄진 게 거의 없고 민생문제도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다. 당청관계는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채 청와대 눈치만 살피고 야당 관계도 대립 일변도다. 언제까지 대통령만 쳐다보고 야당 탓만 하고 있을 건지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정국 현안을 대하는 태도는 더 실망스럽다. 자유한국당은 최근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논의를 제안했다.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당내 분란을 잠재우려는 정치적 의도가 역력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여당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외면하는 것은 당당하지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 청와대와 여당이 끈질기게 요구했던 개헌도 그렇거니와 선거제도 개혁은 정치발전을 위해 시급한 과제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났듯 소선거구제로 대표되는 현행 선거제도는 거대정당의 독식을 허용하도록 설계돼 있다. 한국당의 주장이 다음 총선에 대비한 정략적 차원이라면 민주당의 반대 또한 별반 다를 게 없다.
당장 민주당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개혁입법 처리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돕기 위한 여러 법안과 권력기구 개편, 재벌개혁, 노동개혁 관련 법안이 쌓여있다. 다행히 민심에 놀란 야권 일각에서 개혁입법 연대를 제의했다. 민주당 평화당 정의당 등이 연대하면 과반이 가능하고, 바른미래당까지 가세하면 안정적 국회 운영이 가능한 5분의 3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탄핵추진 세력들이 다시 힘을 합쳐 촛불민심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여당은 청와대를 의식하며 어정쩡한 입장이다. 지방선거 이후 야당은 민심을 잡기 위해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여당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기득권 유지와 ‘부자 몸조심’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의당 지지율 수직 상승은 진보진영이 더 이상 정부와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보수야당 심판이 끝난 지금은 오로지 여당의 실력만이 평가 잣대다.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최근 토론회에서 “당이 청와대를 견제하지 못하고 침묵하면 자유한국당처럼 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민주당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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