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남편이 술을 마시고 폭행을 일삼아 10년 간 별거한 후 사망한 경우에도 외국인 아내가 국내에 계속 체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별거에 이르게 된 주된 책임이 남편에게 있는 데다, 별거 후에도 혼인관계는 유지돼 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김선영 판사는 몽골인 A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체류기간 연장 불허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2001년 한국인 남성 B씨와 혼인해 국내 체류자격을 얻었다. 이후 5년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하다 2006년 말 별거에 들어갔다.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들과 자주 갈등을 빚던 남편의 요구 때문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을 대신해 식당·모텔·편의점 등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한 A씨는 별거 후에도 한두 달 간격으로 남편 집을 찾아 보살피고 생활비를 건네기도 했다. 남편은 작년 4월 지병으로 사망했고, 약 한 달 후 A씨는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이를 근거로 ‘배우자와 장기간 동거하지 않았고, 배우자의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등 혼인의 진정성이 부족하다’며 같은 해 11월 체류 기간 연장을 불허했다.
법원은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부부간에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모습은 다양할 수 있다”며 “동거를 하지 않거나 질병에 걸린 배우자를 옆에서 간병하지 않는다는 등의 사정만으로 혼인관계의 진정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별거에 이른 책임이 남편인 고인에게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 판사는 “A씨는 국내에서 체류하던 중 자신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정상적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며 “이는 출입국관리법상 체류 기간 연장을 허가할 조건인 ‘국민인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그 배우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또는 적어도 상대 배우자의 주된 귀책사유로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