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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로서 피투성이로 발견된 대학생… 범인은 누구

입력
2018.07.08 14:00
수정
2018.07.0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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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가로등 불빛만 겨우 밝혀진 겨울 밤이었다.

2007년 1월 15일 오후 7시 40분. 일본 교토시 사쿄(左京)구 세이카대 만화학부 1학년 치바 다이사쿠(20)는 친구 집에 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서둘러 캠퍼스를 나섰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키노(木野)역 쪽으로 10분쯤 달렸을 때였다.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탄 남성이 오고 있었다. 검정색 상하의에 곱게 가르마 탄 단발머리. 앞에 바구니가 달린 주부용 자전거 ‘마마챠리(ママチャリ)’까지. 동네 마실 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통행 문제로 말다툼이 시작됐다. “정신 나간 놈, 멍청한 녀석” 남성이 폭언을 쏟아내며 뭔가를 꺼내 들었다. 칼날의 폭이 2㎝ 넘을까 말까 한 작은 칼이었다. 남성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도로 옆 논밭으로 떨어진 치바는 논 귀퉁이를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팔뚝, 허벅지 등엔 자상(칼에 찔린 상처)이 그득했다. 남성은 도망가는 치바의 등과 허리춤에 수 차례 더 칼자국을 냈다. 그리고는 도로 위로 올라와 쭈그려 앉은 채 죽어가는 그를 지켜봤다.

만화가가 꿈이던 청년

미야기(宮城)현 출신인 치바는 만화가가 꿈이었다. 재수 끝에 2006년 일본에서 유일하게 만화학부가 있는 세이카대에 입학했다. 치바는 교토 한 지역신문에 만화를 투고할 만큼 그림 실력이 뛰어났다. 작품 이름은 ‘한 쪽의 우주’.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돌이켜 보면 참 얄궂은 내용이었다.

치바는 행인의 신고로 병원에 옮겨졌다. 폐, 심장 등 주요 부위의 출혈이 심해 손을 쓸 수 없었다. 치바는 이송된 지 1시간 20분 만에 끝내 사망했다. 지갑, 자전거, 노트 등 치바의 소지품은 현장에서 그대로 발견됐다. 치바가 남긴 마지막 말은 “모르는 남자의 칼에 찔렸다”였다.

교토 경찰청 시모가모(下鴨) 경찰서는 70여명을 투입해 수사 본부를 꾸렸다. 참고인 조사를 통해 사건 당시 남성이 논밭 쪽으로 치바를 몰아세운 뒤, 양 어깨를 앞뒤로 흔들며 “정신 나간 놈”, “멍청한 놈”이라고 하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인 건 통행 문제 때문으로 보였다. 정황상 남성이 치바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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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범한 범인

목격자에 따르면, 남성은 영락없는 건달이었다. 간사이(関西) 사투리를 쓰며, 심하게 몸을 흔들거렸다. 또 대범했다. 사건이 일어난 자전거 도로는 세이카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자주 다니는 길이었다. 살인을 저지르기엔 ‘눈’이 너무 많았다. 남성은 치바를 살해한 뒤 자신이 타고 온 자전거를 타고 북쪽으로 달아난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옷차림으로 미뤄 볼 때, 사고 현장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주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경찰은 탐문 수사를 벌였다. 15명 넘는 목격자를 확보했다. 이들 증언을 토대로 남성의 몽타주를 제작했다. 키 175㎝ 이상, 발 크기는 280㎝. 외국산 트래킹화를 신고 있었으며, 머리는 단발이었다. 지퍼가 달린 검정색 상하의에, 앞에 바구니가 달린 주부용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코가 길고, 둥글게 찢어진 눈에, 양 옆으론 가르마를 탔다. 수사 1주일 만에 흐릿했던 범인의 정체가 한층 또렷해졌다.

수사는 예상 밖으로 장기화했다. 전단지 수만 장을 뿌려도 범인의 꼬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사고 현장 근처에서 수상한 남성을 봤다”는 제보만 100건이 들어왔다. 그러나 유의미한 내용은 없었다. 경찰은 전국으로 수사망을 넓혔다. 사건 당시 남성의 건들거리는 행동을 재현한 영상을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범인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교토 경찰서 홈페이지
교토 경찰서 홈페이지

“죽은 아들,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아”

치바가 사망한 지 1년째 되던 2008년 1월 14일 오전. 정장 차림을 한 초로의 남성과 단발머리 여성이 키노역 인근 자전거 도로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교토경찰청 수사1과 히구치 후미카즈(樋口文和) 과장과 치바의 어머니 준코(淳子)였다. 준코는 “길고 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치바의 존재를 느낀다”며 “치바가 살아있는 범인을 향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사과해’라고 외치는 울음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후로도 범인을 끈질기게 쫓았다. 연인원 4만 명을 투입, 사건 현장 인근 1만 1,000가구를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벌였다. 전철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이른바 ‘공중전’을 벌였다. 배포한 전단지만 수십 만 장. 매년 사고 현장을 찾아 희생자에 헌화하며 범인 검거를 다짐했다. 그러나 범인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수사가 난항을 겪자, 치바의 동창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서기도 했다. 세이카대 만화학부 학생들은 2008년 살인사건의 간략한 개요와 범인의 몽타주를 담은 만화책 수백 부를 자체 배포했다. 한 대학원생은 치바의 사건을 주제로 예술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경찰은 범인 앞에 현상금 300만 엔(약 3,031만 원)을 걸어 놓은 상태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송영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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