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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난민 친구

입력
2018.07.0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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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 입학 첫날 복도에서 마주친 그는 레게식 드레드 머리를 하고 라스파타리안 수건을 가방에 동여매고 다녔다. 그 친구는 도가사상에 심취해 있었고 시를 곧잘 썼다. 나에게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들을 알려 준 사람도 그다. 자기 나라의 정치 상황에는 놀라울 만큼 무심했지만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여유로운 한국에 대해서는 궁금해했다.

그의 가족은 그가 태어날 무렵 이집트의 카이로로 이주했다. 시리아 국적인 그의 어머니는 홀몸으로 두 아들을 키웠는데, 내가 들은 바로는 두 번의 이혼 중 한 번은 전 남편이, 그러니까 내 친구의 아버지가 하나님을 원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 어머니가 보통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두 아들의 교육을 위해 다시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했고, 최근까지도 여성의 운전이 불법이었던 그 나라에서 두 아들을 하지 순례에 바래다주기 위해 직접 차를 운전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이후 그녀는 아들들을 프랑스에 유학 보내고 얼마간 시리아에 머물렀다가, 내전이 격해진 2009년경 자신도 망명했다. 그녀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두 아들도 덩달아 그렇게 됐다. 나는 그 집에서 종종 민트차를 곁들인 마클루바를 얻어먹었는데, 한번은 그 가족이 예배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다. 어머니의 망명 전까지 예배라고는 생각도 않던 두 아들은 불평했지만 그 예배는 내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나에게, 여성의 예배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지금과 달리 초기 이슬람 공동체에서는 남녀가 함께 예배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2012년, TV뉴스에서 그녀를 보았다. 국제사회의 시리아 사태 개입을 촉구하는 노팔 알 다왈리비의 기자회견에 동석해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망명 정부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영어권 인권 뉴스에서, 예를 들면 사우디의 여성 축구대표팀 문제나 중동의 풀뿌리 운동 등을 다룰 때 자주 인용되는, 꽤 알려진 여성주의 사회학자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나와 벗하던 또 다른 무슬림은 프랑스 사람이다. 무신론자였던 그는 이라크 난민인 여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개종했다. 이라크에 남아 있는 할머니가 무슬림 사위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할머니와의 영상통화에 우연찮게 끼어든 적이 있다. 오직 한 마디 알고 있는 아랍어로 인사를 건넸더니 평생에 동양인을 처음 보았다며 펑펑 우셨다. 듣자 하니 그곳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영상통화도 자주 못한다고 했다. 만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이 할머니를 울게 만들었으리라.

그 친구 부부의 집에 가 있을 때면 네 살 난 딸이 종종걸음으로 거실을 돌아다녔고 그 뒤를 역시 네 살 난 리트리버가 따라다녔다. 내 친구의 아내는 당시 영화학교를 막 졸업하고 연극배우가 되어, 모세 이야기에서 모세의 누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친구와 친구의 딸과 함께 그 연극을 보러 갔다. 이민자들을 위한 아랍어 연극이었기 때문에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모세가 가족들과 상봉하는 장면에서 터져 나온 객석의 흐느낌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가 만난 아랍계 이민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친절했고 항상 사소한 것 하나라도 나누어 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이슬람 난민이라고 하면 곧장 테러리스트를 떠올리는 시각에는 복잡한 심정이 든다. 근래 국내에 들어온 난민들로 인해 불안해하는 여론이 있는 줄은 알지만, 세상이 아무리 좁다 한들 그들이 유럽 등지의 테러리스트들과 한번 만난 적이나 있었을까? 면밀한 확인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불안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그런 폭력을 피해서 온 사람들 아닌가. 그중에는 우리의 벗이 될 사람도 있을 터이므로, 우리에게 그들 각자의 삶을 더 들어줄 수 있는 도량이 있기를 바란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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