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세 번째 방북 길에 오르면서 6ㆍ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비핵화 이행 의지가 첫 시험대에 올랐다. 미 국무부가 북한이 강한 거부감을 보여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용어를 바꾸는 등 유연하게 대처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화답 여부가 향후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 내에서 북한의 비밀 핵 프로그램에 대한 관련 보도가 잇따르면서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팽배한 가운데 북한의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로 떠오른 신고ㆍ검증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국무장관 전용기편으로 워싱턴 DC를 떠나 평양에서 1박 2일간 체류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포함해 북한 인사들과 만날 예정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에서 숙박하는 것은 처음으로 북미간 협상 의제가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 협상에서 다룰 의제는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폐기 등 초기 비핵화 조치와 신고ㆍ검증 등의 향후 절차, 그리고 미군 유해 송환 등 크게 세 가지다.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폐기는 6ㆍ12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두 약속된 사안이지만, 미국은 미국 측 전문가들의 참관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당시 전문가들의 참관은 배제해 신뢰성에 의문을 낳았다. 이외에도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 등 진전된 조치가 합의될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 같은 일부 시설의 중단 또는 폐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밀 핵 시설까지 포함한 완전한 신고와 검증에 대한 합의로서 향후 비핵화 이행의 토대에 다름 없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자유아시아방송(FRA)에 “북한이 몇 개의 핵무기를 포기한다고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시간표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며 “플루토늄, 우라늄, 미사일, 생화학무기, 대량살상무기 등 모두에 대한 신고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가이익센터 국방 연구국장도 폭스뉴스 기고문에서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번 방북에서 핵탄두 보유량과 보관 장소, 원자로 개수와 위치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ㆍ미사일 프로그램 신고 범위와 일정, 이에 대한 검증 절차를 어떻게 합의하느냐가 이번 협상의 성과를 가늠하는 열쇠라는 얘기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에 관한 구체적인 약속을 받지 못하고 돌아오면 정부 안팎에서 북한에 대한 회의론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강경파들의 견제가 힘을 받아 폼페이오 장관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CNN은 “폼페이오 장관이 협상 진전의 가시적 신호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북한으로 향한다”고 전했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5월 2차 방북 당시 한국계 미국인 억류자 3인의 석방을 얻어낸 것처럼 미군 유해 송환의 성과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유해 송환은 6ㆍ12 정상회담 문서에서 합의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 문제를 이번 고위급 회담 결과와 연계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방북 일정을 마무리 하는 대로 일본으로 건너가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의를 열어 방북 협의 결과를 공유하고 후속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비핵화가 단기간에 이루어지길 기대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4일 베이징(北京)을 방문 중인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과 면담에서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고 마트비옌코 의장이 면담 뒤 기자들에게 전했다. 마트비옌코는 의장은 “시 주석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사실 자체를 높이 평가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여러 차례 회담을 통해 그가 진실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및 안정 회복에 관심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면서 “하지만 시 주석은 급속한 결과를 기대해선 안 되며 이는 긴 과정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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