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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고싶다” 광장으로 거리로 나서는 넷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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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고싶다” 광장으로 거리로 나서는 넷페미

입력
2018.07.05 20:00
수정
2018.07.05 23:2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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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서 출발 각종 여성혐오 대응

2016년 강남역 살해사건 이후

바깥으로 나와 세 결집 본격화

생리대ㆍ여아 살해… 이슈 공론화

일상의 불안ㆍ불평등과의 싸움

극단적 목소리에 갈등 조장 반응도

내일 ‘성 편파수사 규탄’ 3차 시위

주최측 3만여명 참가 예상

[저작권 한국일보]9일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진행된 두 번째 ‘불법촬영 성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는 4만5천 명의 여성이 참가해 지금 여기, ‘행동하는 페미니즘’의 한 모습를 보였다. 한소범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9일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진행된 두 번째 ‘불법촬영 성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는 4만5천 명의 여성이 참가해 지금 여기, ‘행동하는 페미니즘’의 한 모습를 보였다. 한소범 기자

‘뭉텅’ 기다란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상여자” “시원하다” 연호가 쏟아졌다. 마이크를 든 사회자는 “삭발은 강력한 의지와 물러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삭발이라는 행동으로 우리 뜻을 보이려 한다”고 외쳤다.

5월 19일 1차 시위에 이어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진행된 두 번째 ‘불법 촬영 성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는 4만5,000명의 여성이 운집(주최 측 추산)했다. 7월 7일 혜화역 1번 출구에서 열릴 3차 시위 역시 3만명 가량이 모일 것으로 주최 측은 내다봤다. 역대 여성 시위 중 최대 규모였다는 지난달 시위를 비롯해, ‘낙태죄 폐지 시위’ ‘반라 시위’ 등 최근 곳곳에서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 시위’와 수많은 ‘페미니스트(feminist)’들. 이들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주장하며, 어디로 가고 있을까.

‘뉴(New)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이들은 애초 온라인에서 태동했다. 2015년 2월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하겠다며 종적을 감춘 10대 남성이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어요”라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페미니즘’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는 곧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 선언으로 이어졌다. 이후 온라인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뭉친 이른바 ‘넷페미(net-feminist)’들은 ‘미러링(의도적 모방)’을 통해 여성혐오에 대응하고, 낙태죄, 생리대 안전, 여아 살해, 소라넷 폐지 등 각종 이슈를 공론화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을 통해 모이고 흩어지던 이들이 2016년 서울 강남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이후 바깥으로 나와 본격 집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등을 펴낸 손희정 평론가는 “’여성이라서 범죄의 대상’이 됐다는 공포는 곧 ‘나 역시 언제든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일상의 불안으로 바뀌었다”면서 “이는 곧 거리를 점거해 직접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체적 모습으로 나타났고, 더불어 2016년 촛불시위의 경험 역시 ‘광장’과 ‘거리’를 공론장의 창구로 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2주기'인 5월 17일 저녁 서울 신논현역 인근에서 여성단체 회원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2주기'인 5월 17일 저녁 서울 신논현역 인근에서 여성단체 회원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지난달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상의 탈의 시위를 벌여 주목 받은 ‘불꽃페미액션’ 역시 애초 여성농구단으로 결성됐지만, 강남역 시위를 기점으로 페미니즘 단체로 변모했다.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가현은 “운동(sports)을 운동(movement)으로 바꾸려면 직접 행동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와 서초경찰서에 가서 시위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00내_성폭력’ 고발을 통해 예술계와 직장 등 곳곳에 만연해 있던 성폭력 경험 말하기가 쏟아지면서, 각종 집담회나 시위 등 오프라인 연대는 더욱 활발해졌다. 1차, 2차 혜화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은 “나만 겪은 고통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미투(#Me Too)’와 각종 집회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혼자서만 세상의 불평등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위가 ‘혐오’에 ‘혐오’로 대응할 뿐 오히려 사회갈등을 부추긴다는 불편한 반응도 터져 나왔다. 혜화 시위의 경우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 가능하다고 못 박으면서 성소수자나 남성 페미니스트를 운동에서 소외시키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경찰 성비, 여성 9대 남성 1’ 등 정비되지 않은 구호가 지나치게 급진적, 극단적이라는 목소리도 쏟아졌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가 감당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는 사회해체까지 초래할 수 있는 지나치게 극단주의적인 경향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면서 “일방적인 입장만을 강요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전부 적대하는 사회운동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급진적 모습을 페미니즘 운동의 일반적 성격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손 평론가는 “페미니즘은 철학이기도, 세계관이기도, 사회변혁운동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위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드러나는 모습들을 모두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페미니즘은 성별과 분야를 막론하고 지금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포함되는가 하면 관련 상품이나 공부 모임도 활발하다. 올해부터 페미니즘 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남성 이모(29)씨는 “페미니즘이 여성해방 움직임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결국 남성도 폭력성과 남성성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공부 이유를 밝혔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페미니즘은 거부할 수 없는 ‘물결’이기 때문에, 일부 페미니즘 운동의 배타성에 주목하기보다는 다양한 층위의 페미니즘이 어떤 식으로 한국사회에 변화를 가져올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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