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군 은신처 지목→가옥 폭파해묵은 반군소탕 작전에 분노어린 소년까지 돌 던지고 시위
軍 폭력으로 사망한 민간인최근 1년여새 140여명 추산“인도군이 반군 키우고 있다”
지난달 22일 인도령 잠무-카슈미르주(州) 남부의 아난트나그 지구에선 카슈미리 무장반군과 군경합동작전팀 간 총격전이 벌어졌다. 반군 측 사망자 4명 중 한 명인 ‘다우드 살라피’는 이른바 ‘잠무-카슈미르 이슬람국가’(ISJK)’로 불리는 무장단체의 리더로 알려진 인물이다. 잠무-카슈미르(이하 ‘카슈미르) 지역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와 연계된 반군이 숨진 첫 사례였다.
카슈미르 시위 현장에 IS 깃발이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14년 10월 17일이다. 그러나 IS가 배후를 자처한 공격은 지난해 11월에야 처음 발생했다. 당시 카슈미르의 ‘여름 수도’인 스리나가르 외곽의 자쿠라에서 있었던 총격전으로 경찰관 1명과 반군 1명이 각각 사망했다. 카슈미르는 기후 조건 탓에 하절기와 동절기에 수도가 다른데, ‘겨울 수도’는 잠무로 정해져 있다. IS는 선전매체 ‘아마크 통신’을 통해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혔다. 올해 2월 25일 스리나가르 수라 지역의 한 경찰관이 살해된 사건에서도 IS는 배후를 자처하고 나섰다.
IS는 정말로 카슈미르에 둥지를 튼 것일까. IS가 PDF 형태로 온라인에 유통해 온 ‘다비크(Dabiq)’ 13호(2016년 2월 발행)는 카슈미르 지역의 무장단체 중 하나인 ‘라슈카 레 토이바’를 ‘파키스탄 에이전트’라고 비난하면서 “많은 카슈미르 무장대원들이 ‘IS 쿠라산지부’(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일대에서 활동하는 IS 단체)로 이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듬해 IS는 웹사이트를 통해 “카슈미르의 ‘자키르 무사’라는 인물이 이끄는 안사르 가즈와툴 힌드(AGH)가 우리 지부”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자키르 무사는 카슈미르의 대표적 무장단체인 히즈볼 무자히딘에서 분파한 뒤, 지난해 7월 AGH를 띄우면서 ‘알카에다 연계’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일부의 분석대로라면 소위 ‘프리랜서’ 무장반군들이 ‘IS 간판’과 ‘알카에다 간판’ 사이를 오가는 것일 수 있다. 앞서 ‘ISJK 리더’라고 언급된 다우드 살라피 역시 그런 유형의 인물로 보인다.
이 같은 흐름은 카슈미르 무장반군 진영에 일고 있는 작은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기존에는 체계가 잘 갖춰진 대형 조직이 중심이었고, 인도-파키스탄 국경 통제선을 넘나들면서 ‘파키스탄에서 훈련을 받고 인도에서 공격하는’ 방식이 주된 형태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뿐만 아니라 카리스마를 지닌 개인 또는 군소 조직들이 널리 알려진 조직 명칭이나 새로운 이름들을 우후죽순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2016년 7월 8일 친(親)파키스탄 계열 무장단체인 히즈볼 무자히딘 사령관 ‘부르한 와니’의 사망을 기점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당시 와니의 죽음은 카슈미르 ‘제2의 인티파다’(1차는 1980년대 후반 무장투쟁 초기)로 불릴 만큼 거대한 시위 사태를 불러 왔고, 인도군은 ‘총력 작전(Operation All Out)’으로 대응했다. 이 작전의 대가는 컸다. 특히 2016년 7월 이후 등장한 ‘펠렛건(pellet gunㆍ공기총의 일종)’이라는 시위 진압용 무기는 1년여간 무려 1,725명의 실명(失明) 사태를 초래했다. 최근 카슈미르에선 ‘펠렛총 피해자 복지기금’까지 조성됐다.
카슈미르 ‘제2의 인티파다’가 낳은 전례 없는 상황은 더 있다. 지난 5월 6일 카슈미르 남부 소피안 지구의 해프 마을에서 벌어진 교전 상황을 보자. 히즈볼 무자히딘 사령관인 ‘사담 파더’는 자택 옥상에서 인도군과 대치하다 숨졌다. 함께 사망한 반군 대원들 중에는 ‘무하마드 라피 바트’라는 이름의 카슈미르 대학 사회학과 조교수도 포함돼 있었다. 카슈미르 사회는 물론, 인도 전역이 충격에 빠졌다. 바로 전날 히즈볼 무자히딘에 가입해 40시간 만에 전사한 그는 ‘최단기 무장대원’으로 기록됐다. 뿐만 아니라 이날 파더의 집 옥상에서 “아자디(자유)!”를 외친 젊은이들 사이로 한 여성이 하늘을 향해 AK-47 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도 포착됐다. 현지 언론들은 해당 여성이 파더의 모친이라면서 “어머니가 무장반군 아들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카슈미르 시민단체들은 ‘2차 인티파다’가 시작된 2016년 7월 중순부터 올해 3월까지 인도군의 폭력으로 사망한 민간인을 130~145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같은 시기, 무장반군에 의해 숨진 민간인은 16~20명 정도다. 카슈미르 주정부와 경찰도 각각 다른 시기를 기준으로 사상자 통계를 내고 있다. 정부의 경우, 2016년 7월 8일~2017년 2월 사망자 51명, 부상자 9,042명이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경찰국 범죄부는 지난해 1년간 시위대 중 78명이 숨졌다고 밝히고 있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경찰국 범죄부의 통계 가운데 지난해 4월에만 시민 15명이 군과 반군의 교전 현장에서 별도의 시위를 벌이다가 총에 맞았다는 사실이다. 일반 시민들이 교전 현장에 돌을 들고 시위에 나선 건 최근 두드러진 현상이다. 지난달 29일에도 카슈미르 남부 풀와마 지구에서 15세 소년 파이잔 아흐마드 푸스왈이 돌을 던지는 시위대 틈에 있다가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병원에 이송된 이 소년의 사망을 공식 확인한 이는 하필 그날 당직의사였던 아버지 압둘가니 푸스왈이었다. 카슈미르는 소총을 든 반군, 돌멩이를 든 소년, 그리고 이들의 가족이 마구 뒤엉키는 비극의 현장이 되고 있다.
5월31일 풀와마 지역에선 준군사조직(paramilitary)인 ‘라슈트리아 라이플(RR)’이 ‘무장반군 은신’을 이유로 내세워 한 가옥을 폭파하려 하자, 격노한 주민들이 이를 막겠다며 시위를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주민들은 RR이 발화성 액체를 뿌리자 결국 피신했다. ‘반군 은신처 지목→가옥 폭파’는 카슈미르의 해묵은 반군소탕 작전 방식이다. 필자는 2007년 7월 17일 방화와 박격포 공격으로 잿더미가 된 집터에 앉아 비명을 지르던 80세 노인 마스라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군의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은 쥐 죽은 듯 몸을 피해야만 했다. 폭파를 막겠다며 시위를 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난달 14일 오토바이 괴한에 의해 암살된 카슈미르 언론인 사이드 슈자트 부카리는 5월 18일 쓴 마지막 칼럼 ‘라마단 휴전’에서 “카슈미르 남부는 무장반군의 요새가 되고 있다”면서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칼럼에서 그는 내무부 장관이 제안한 ‘라마단 휴전’을 거부했던 힌두극단주의 ‘인도국민당(BJP)’과 국방부 장관을 비판했다. 부카리에 따르면 올해 1월 이후 5개월간 무장반군에 가입한 청년은 70명을 웃돈다. 이중 절반에 해당하는 35명은 지난 4월 1일 남부 소피안 지구에서 벌어진 교전 이후에 반군에 몸을 담기로 결심한 경우다. 반군 13명과 민간인 4명, 군인 3명이 사망한 4ㆍ1 교전을 부카리는 ‘피바다(bloodbath)’라고 표현했다. 강경 일변도인 인도군의 대(對)반군작전이 오히려 반군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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