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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고양이, 강아지 그리고 건축

입력
2018.07.0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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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인천에 리모델링한 집주인 부부를 보러 갔다. 테라스에 못보던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린다. 가끔 오는 길냥이에게 밥을 줬더니 이제 제 집인 양 드나든다고 한다. 그 고양이는 얼마 전 새끼를 낳았고(네 마리!) 이젠 동네 친구 두 마리가 더 놀러 와서 모두 일곱 마리가 됐다. 몸 풀기 좋은 곳이라고 소문이라도 났는지 그 중 한 마리는 배가 불룩하다. 내칠 수 없어 사료를 사다 먹이는 정 많은 집주인이지만 그들 부부도 어떡하나 하는 표정이다.

이 집엔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강아지가 살고 있다. 그래서 설계할 때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강아지용 계단을 따로 만들었다. 워낙 조그맣고 겁이 많은 강아지는 자신을 위해 특별히 만든 계단조차도 힘겨워했다. 대신 부부가 정성스럽게 만든 꽃길이 있는 마당에서 놀았다. 그런데 거길 예사롭지 않은 녀석들이 점령해버렸으니 강아지는 바깥에 나오지도 못하고 오들오들 떠는 신세가 된 것이다. 녀석이 풀이 죽었다. 하지만 나도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단다. 미안···.

새롭게 시작한 주택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아예 고양이가 설계의 중심이다. 어린 딸을 키우는 젊은 부부는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를 위한 디자인을 고민해달라고 요청했다. 혈기 왕성한 한 마리는 늘 집 밖으로 나가려 하기 때문에 탈출방지용 장치를 어떻게든 보기 좋게 만들어내야 한다. 높이 2미터 이상의 울타리를 설치하고, 고양이가 1, 2층을 올라 다닐 길을 별도로 만들고, 마당으로 통하는 고양이 전용 출입구 등을 고려하고 있다. 고양이털 때문에 모든 장과 수납장에는 문을 달기로 했다. 요즘 주방은 오픈 선반이 유행이지만 이 집은 어쩔 수 없다. 아예 다섯 명의 개성 강한 사람들이 사는 주택이라고 생각하고 설계를 진행한다.

십여 년 전 집을 지었던 집주인이 리모델링을 요청해서 기쁘게 만나러 갔는데, 그 부부도 강아지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반려견을 키우게 되었는데 강아지가 계단을 올라가다 다리가 자꾸 빠지니 오픈된 부분을 막아달라고 했다. 처음 이 집을 지을 때 전망과 채광을 위해 일부러 계단의 한 면을 오픈해서 디자인했던 건데, 이제는 강아지가 더 우선순위에 있었다. 이사를 할까 고민도 했지만 강아지를 키우기에 이 동네가 좋은 곳이어서 좀 더 살아보기로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반려동물을 설계에 반영하는 건 고작 동물을 위한 집을 지어주는 정도에 불과했지, 이렇게 적극적으로 사람의 공간과 섞여드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몇 해 전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 집의 주인은 늙어 힘이 빠진 강아지가 쉽게 지나다닐 별도의 작은 문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문이 열리는 방향과 여닫히는 세기까지 세심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속으로 그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몇 번의 미팅을 거치면서 ‘아 이 분한테는 저 강아지가 진짜 가족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다. 가족이기에 함께 사는 집이어야 한다.

이런 부분은 학교에서 건축을 배울 때는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상황들이다. 그러나, 이제 반려동물은 사회적인 현상이고, 건축도 이 부분은 간과할 수 없게 됐다. 어쩌면 언젠가는 주택에 대한 정의가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사는 곳’으로 바뀔 지도 모른다.

아직은 개인 차원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도시 영역에서도 이러한 변화에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공원이나 길거리에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우리 동네 중앙공원에는 강아지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 저녁이면 주인과 함께 나온 강아지 수십 마리가 특정장소에 모여 자유롭게 논다. 이제는 ‘반려동물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도시’라는 컨셉트의 도시가 하나쯤 나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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