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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생태!] 한국의 숲을 무성하게 만든 ‘용병’ 나무들

입력
2018.07.07 04:40
수정
2018.07.07 09: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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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에 조성된 금강소나무와 산지습지. 국립생태원 제공
경북 울진에 조성된 금강소나무와 산지습지. 국립생태원 제공

생물들은 경쟁과 공생, 번식과 적응을 통해 진화하였습니다. 수만년의 시간 동안 생물들은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중심으로 생활하며 자손을 번창하였고 그 배경에는 항상 안정적인 서식처가 존재하였습니다.

이러한 안정적인 서식처 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숲입니다. 숲을 대표하는 생물은 나무이지요. 나무는 수십~수백년 이상을 살 수 있는 거대 생물체 중 하나로, 집단을 이루며 오랜 기간 살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숲의 나무와 풀은 생산자로서 생물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며 최소 수백년에서 많게는 수천년 서식처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숲은 외부의 급격한 환경 변화를 완화하여 숲 내 서식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생물들은 이러한 안정적 환경과 지속적인 먹이 때문에 숲으로 모여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에 서식하는 구상나무. 국립생태원 제공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에 서식하는 구상나무.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는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숲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데 그 비중이 24% 가량된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의 기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는 과거 민화와 기록에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조선시대에는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하는 금송령(禁松令), 연륜이 오래된 소나무인 황장목을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아 바위에 새긴 표식인 황장금표(黃腸禁標) 등을 통해 국가적으로 소나무를 보호하였으며 일반인들은 함부로 소나무를 벨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과거의 땔감과 목재는 대부분 소나무를 제외한 나무들이 이용되었고 소나무의 득세가 현재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소나무는 주로 암석이 많은 숲 능선부와 큰 산의 바위 계곡 하류 등으로 햇빛이 많이 들며 다른 나무와 경쟁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주로 자랍니다. 현재는 소나무재선충, 기후변화에 의한 서식처 변화(수종, 기후), 활엽수와의 경쟁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서식처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경북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섬노루귀와 너도밤나무가 숲을 이뤘다. 국립생태원 제공
경북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섬노루귀와 너도밤나무가 숲을 이뤘다. 국립생태원 제공

다음으로 우리나라 숲을 대표하는 나무는 도토리나무라고 부르는 참나무입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이지만 식물도감을 아무리 찾아도 참나무는 없습니다. 이유는 뭘까요. 참나무는 흔히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붉가시나무 등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들을 모두 일컫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불에 타거나 베어내도 뿌리움(맹아)으로 다시 줄기를 내어 숲을 이룰 수 있고 우리나라 전역에서 살 수 있는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참나무류는 과거부터 연료와 목재를 공급하며 우리 조상들에게 사랑 받는 나무였고 ‘참-‘(참하다, 참 좋은)이라는 접두어도 여기서 파생되었습니다.

참나무류의 도토리는 숲 생태계에서 중요한 먹이원입니다. 많은 동물들이 참나무류에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참나무류 분포를 보면 신갈나무는 참나무류 중에서 가장 높은 지대까지 살아가며 높은 지대로 갈수록 모여서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졸참나무는 신갈나무에 비해 낮은 지역에 살아가지만 우리나라 전체에서 살아가는데요. 특히 광릉 일대의 졸참나무 숲은 500년 이상 잘 보존되어 있지요.

비교적 다른 참나무류들이 자라기 힘든 암석이 많은 곳에서는 굴참나무가 잘 자랍니다. 난대지방(남부 일부 지역과 제주도 일대)의 계곡을 따라서 살아가는 늘푸른나무인 붉가시나무는 전국 어디를 가든 만나게 되는 우리나라 숲생태계의 주연이자 조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괴된 우리나라 숲을 되살린 주인공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불렸던 우리나라 숲은 일제강점기 수탈과 6ㆍ25 전쟁을 겪으며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그 결과 산사태, 홍수와 같은 재해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으며 서식처를 잃은 동물들은 떠나갔고 유기물이 없는 토양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에 1973년부터 정부 주도의 치산녹화 사업이 시작됩니다. 사람이 직접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자연적으로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는 시간보다 빠르게 숲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며 겨울 추위에도 강한 리기다소나무는 파괴된 우리나라 숲을 빠르게 복원하기 위해 심어졌다. 국립생태원 제공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며 겨울 추위에도 강한 리기다소나무는 파괴된 우리나라 숲을 빠르게 복원하기 위해 심어졌다. 국립생태원 제공

이렇듯 숲을 빠르게 조성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자라고, 척박한 곳에서 죽지 않으며 토양 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나무가 필요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나무가 바로 헝가리 국적의 아까시나무, 미국 국적의 리기다소나무, 일본 국적의 일본잎갈나무 등 입니다. 이들은 비록 외국에서 들여온 나무였지만 민둥산을 울창한 숲으로 만드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이 ‘용병’들은 강인한 생명력과 토양 내 질소 고정, 유기물 공급, 연료, 벌꿀 생산 등 다양한 역할을 해주었고 목재 또한 생산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주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의 숲들은 1973년부터 시작된 치산녹화사업의 결과물입니다. 숲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는 과거 역사적 산물이며 우리의 노력입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숲은 인간의 접근이 힘든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사람과 자연이 힘을 합쳐 만든 역사적인 숲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이의 과정. 국립생태원 제공
천이의 과정. 국립생태원 제공

숲은 생물다양성을 이끄는 힘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많은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변할까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구조물은 풍화하고 바래지면서 녹색의 땅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녹색의 땅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천이’라고 합니다. 천이의 과정은 먼저 암석이 지의류, 선태류, 바람 등에 풍화되어 식물이 살 수 있는 토양을 만들며, 그 척박한 토양을 풀과 작은 나무들이 유기물로 안정화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은 나무들은 큰 키 나무와 경쟁하며 서로의 위치를 찾아가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숲은 온대림에 속하며 사막, 툰드라 지대와는 다르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숲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는 축복 받은 땅입니다. 한 세대의 생애주기가 80년이라고 가정했을 때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숲이 되기까지는 다음 세대쯤 되어서야 가능할 것입니다.

강원 고성군 향로봉 가장자리에 서식하는 왜솜다리. 국립생태원 제공
강원 고성군 향로봉 가장자리에 서식하는 왜솜다리.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 숲은 인간에 의해 파괴된 후 새로 생긴 이차림과 자연적으로 생긴 일부 자연림이 합쳐진 곳으로 천이과정이 다양하고 복잡한 편입니다. 여기에 맞물려 난대, 온대, 한대의 폭넓은 기후대와 지형이 만들어내는 고저차이, 지형과 지질학적 특성에 따른 석회암, 화강암, 풍혈지대 등 다양한 서식처가 존재하며 약 2만종의 생물들이 숲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서식처에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복잡하게 엮여 생태계를 형성하며 이는 생물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힘은 숲의 서식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고지대에 서식하는 가시오갈피. 국립생태원 제공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고지대에 서식하는 가시오갈피. 국립생태원 제공

기후변화로 사라지는 숲

최근 기후 변화와 인간의 간섭으로 인해 숲이라는 서식처가 사라진다는 보고가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기온은 지난 100년간 약 1.5도 상승했으며 이는 전 세계 평균 기온 상승률인 약 0.7도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생물들이 느끼는 1도의 무서움은 어마어마합니다. 해발고도가 160~170m 상승할 때마다 기온이 1도 감소한다고 할 때 높은 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1도가 오를 때마다 160~170m 가량의 서식처 변화를 겪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도가 높은 지역에 적응한 북방계 식물은 기후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높은 고도에 적응한 식물 쇠퇴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예로 한라산에 말라 죽은 구상나무는 보는 이들에게 공포감을 줄 만큼 참혹합니다.

제주도 한라산에 구상나무가 말라 죽어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제주도 한라산에 구상나무가 말라 죽어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이와 비슷하게 높은 고도의 분비나무, 주목, 가문비나무의 쇠퇴가 우리 숲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으며 이는 기후 변화의 심각성이 목전까지 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인위적인 간섭에 의한 서식처 파괴는 생물을 고립화시켜 멸종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생물과 무생물은 생태계 시스템 속에서 상호교류하며 살아가는데, 교류의 공간이 고립되거나 멀리 떨어질 때 생물의 멸종 가능성은 높아지게 됩니다.

경북 울릉군 울릉도에 피어난 섬국수나무. 국립생태원 제공
경북 울릉군 울릉도에 피어난 섬국수나무.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와 같이 서식처 다양성이 높은 지역에서 급격한 환경 변화와 서식처 파괴는 생물다양성 감소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60% 이상이 바로 숲입니다. 우리는 반세기 이상 숲을 만들고 잘 보전해 왔습니다. 지금이라도 생물다양성의 근간이 되는 우리 숲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천광일 국립생태원 생태지식문화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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