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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 계약 한다면… 부모 “방문ㆍ전화 관심” 자식은 “간병 고민 1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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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 계약 한다면… 부모 “방문ㆍ전화 관심” 자식은 “간병 고민 1순위”

입력
2018.07.07 09:0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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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모는 정서적 교류 바라고 

 자식은 경제적 부양 의무감 

 #2 

 부모 세대 갈수록 독립 성향 

 “못 물려줘도 서운해하지 마라” 

 주택연금 가입자 꾸준히 증가 

 #3 

 “계약서 가족은 신뢰 무너진 것 

 논밭 다 팔아줘도 효도 기대 못해” 

효도계약은 화목한 가족관계의 지침서가 될 수 있을까. 적잖은 이들의 대답은 노(NO)다. 게티이미지뱅크
효도계약은 화목한 가족관계의 지침서가 될 수 있을까. 적잖은 이들의 대답은 노(NO)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새는 노인들도 자기 삶 즐기느라 바빠요. ‘나를 언제 보러 오나’하고 애들만 기다리는 건 아니란 얘기에요. 그런데도 보고 싶은 건 사실이죠. 애들도 애들이지만, 꼬물꼬물한 손녀가 눈에 밟히잖아요. 말은 못 해도 애들이 안 보이면 동생, 조카들 보기가 민망스러우니 제사나 명절 때만이라도 꼭 좀 있었으면 하는 건 내심의 기대고요.” (76세 공기업 은퇴자 A씨)

“일단 자식 된 도리라고 하면 편찮으실 때 병원비 등 목돈도 내놓고, 경제적으로 필요할 때 도움이 돼 드려야죠. 그러려면 우선 제가 열심히 잘 벌어야 하고요. 주변에선 자식 한 명 결혼시키는데 2, 3억도 든다고 하니 이래저래 모아둬야 할 돈이 많고 시간은 부족한 게 사실이죠.“ (51세 자영업자 B씨)

‘효(孝)’를 둘러싼 가족갈등의 모습은 집집마다 다양하지만, 여기에도 공통분모는 있다. 효의 내용을 바라보는 부모와 자식 세대의 인식 차다. 끈끈한 정서적 교류를 원하는 부모와 자신의 삶을 누리면서도 부양에 의무감을 느끼는 자식 세대의 입장 차가 복잡미묘한 갈등의 변주곡을 만든다. 이런 ‘동상이몽’을 예민하게 읽고 먼저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선언하는 노인세대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식도, 부모도 서로에게서 받아내려 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서로가 원하는 화목한 정서적 왕래가 일어난다”고 조언한다.

 ‘효도’에 대한 동상이몽 

효에 관한 견해차는 연구로도 입증된다. 지난해 발간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 ‘효도계약과 불효자 방지 법안에 대한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태도’에 따르면 연구팀은 2016년 대학생 210명, 부모 198명에게 ‘실제 효도계약을 할 경우 포함될 수 있는 조건’을 물었다. 그 결과 부모는 ‘정서적 지지’를, 자식은 ‘부모 간병’을 최우선 조건으로 생각했다. 효도 계약의 내용을 ▦신체ㆍ물리적 도움 ▦정서적 지지 ▦부모 간병 ▦경제적 부양 ▦규범적 의무 등 다섯 가지로 나눠 각 요구도를 4점 척도로 분석한 결과, 부모 세대는 정서적 지지(3.14점)를, 자녀 세대는 부모 간병(3.29점)을 각각 `효도` 항목 1순위로 꼽은 것이다.

즉 부모들이 바란 ‘정서적 지지’의 내용은 ▦방문 및 안부 전화 ▦가족여행 및 기념일에 함께 식사 ▦부모와 자주 대화 ▦집안일을 함께 의논하고 결정 등이다. 자녀 세대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모 간병’의 구체 내용은 ▦부모가 편찮으실 때 병간호 잘하기 ▦부모가 병석에 눕게 되면 병시중 잘해드리기 ▦부모의 사무처리 능력 저하 시 성년 후견인 행사 ▦부모의 거동이 불편할 경우 이동에 도움 드리기 등이다.

눈에 띄는 또 다른 인식 차는 ‘규범적 의무’에 대한 부모(2.99점) 세대의 기대가 자녀(2.77점)들의 생각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규범적 의무는 ▦집안의 대소사에 참석해 경제적 물리적 지원하기 ▦명절에 찾아뵙기 ▦가계계승을 위해 결혼과 출산하기 ▦형제 친척 간 우애 있게 지내기 등이다. 자녀 세대는 간병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경제적 부양’에 대해, 정작 부모 세대는 가장 낮은 요구도(2.56점)를 보였다. 연구진은 “부모 세대의 경우 아직 전통적인 효와 부양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반면, 성인 자녀 세대는 기능적 측면의 수동적이고 조건적인 부양을 선호하고 있다”고 봤다.


 

 노년 인식 ‘독립형’ 변신 중 

오히려 부모 세대는 갈수록 자신의 생활비나 거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 삶은 독립적으로 누리되 자식들과 끈끈한 감정적 연대를 유지하길 바라는 것. 생활비 보조나 간병 같은 기능적ㆍ경제적 책임감을 느끼는 자식 세대의 짐작과는 다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4~11월 전국 만 65세 이상 노인 1만299명 대상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가장 선호한 ‘노후생활 마련 방법’은 ‘스스로’(34%)였다. 뒤를 이은 것은 ‘본인과 사회보장제도’(33.7%), 사회보장제도(14.1%) 순이다. 압도적 다수(81.8%)가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거나 국가적 차원의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을 받겠다고 답했다. 자녀가 마련했으면 한다는 답은 7.6%에 불과했다.

‘거동이 불편해지면 어디에 살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도 ‘자녀, 배우자, 형제자매와 함께 살겠다’는 답은 10.5% 수준에 그쳤다. 대부분은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거주지에 계속 산다(57.6%)거나 요양시설 이용(31.9%)을 희망했다.

거동의 자유와 무관하게 기혼자녀와 함께 살고 싶다는 노인은 2008년 32.5%에서 2017년 15.2%로 급격히 줄고 있다. 실제로 자식과 같이 살게 되더라도 그 이유는 주로 부모가 희망해서이기보다는 ‘가사지원, 손자녀 양육 때문에 자녀가 원해서’(27.3%)인 경우가 가장 많다.


 

 부모의 행복한 삶이 최고 유산 

이렇다 보니 부모 세대 일각에서는 유산은 최대한 늦게, 또 적게 주는 것이 자신과 가족 모두의 평화를 지키는 ‘현명한 처신’으로 통한다. 노후대책이 다 든든한 것도 아닌데 생활비도, 거주도, 즐거운 은퇴 생활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 재산을 최대한 내가 쥐고 쓰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재산도 재능도 다 쓰고 여한 없이 죽자’는 노년층의 이른바 쓰죽회(본보 2017년 6월3일자 1면 참조) 모임이나 늘어나는 주택연금 가입자들이 대표적 사례다. 주택연금은 집을 담보로 평생 혹은 일정 기간 매월 노후생활자금을 받는 국가보증 금융상품이다. 도저히 다 못 쓸 재산이 쌓인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식 공부는 시켜줬으니, 남은 건 내가 쓰고 가리”라는 이들에게 효도계약을 둘러싼 가족갈등은 남의 얘기다.

4년 전 주택연금에 가입한 박화규(80)씨는 “주위에서 부모 부양문제로 가족 갈등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면서 안 되겠다 싶어 결단했다”며 “처음에는 집은 한 채 남겨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고, 애들이 서운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다들 ‘잘하셨다’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 오산시 소재 3억원대 아파트를 담보로 매달 약 100만원을 받는다. 부모님 생활비 부담이 사라지자 2남 1녀의 자식들도 환영했다.

“꼭 부모가 뭘 물려주거나 약속한다고 자식이 더 오는 건 아니거든요. 저는 애들하고 밴드(BANDㆍ네이버의 온라인 모임 앱)로 매일 연락해요. 애기들 사진도 올려주면 자주 보고 좋아요. 애들이 오겠다고 해도 내가 바빠요. 자원봉사하고 시청 홍보기자 활동하면서 노인잔치, 체육대회 등에 취재 다니느라.”

그는 “나이 들면 노인생활만 30~40년을 해야 하는데 이 시기를 즐겁게 보내려면 경제적, 심리적 독립이 필수”라고 했다. 박씨 같은 주택연금 가입자는 꾸준히 늘어 올해 1월 5만명을 돌파했다. 출시 10년 5개월여 만이다.

 

 정서적 연대는 신뢰에서 

유산상속과 가족의 화목을 별개로 여기는 건 젊은 부모도 마찬가지다. 의약품 도매상을 운영하는 강준옥(53)씨는 “아버님이 평생 모은 재산에 기댈 생각이 없고, 자식에게도 ‘대학 공부까지만 시켜준다’는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며 “혹여 물려 주더라도 사후에 일부 주는 거지, 미리 주거나 계약을 맺을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형제들을 설득한 그의 권유로 부친은 6년 전 평생 모은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했다. 유산 문제가 깨끗해지니 누가 모실지, 생활비는 어떻게 할지 등을 놓고 가족들이 얼굴 붉힐 일도 없다.

“보통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고 나서, 자식이 매달리면 엄마들이 못 이기고 재산을 미리 준다네요. 혹시 그럴까 싶어 신탁해놓을 생각도 있어요. 제일 중요한 이유는 물려받을 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뭐든 열심히 안 하니까요. ‘애가 혹시 잘 안되면 가게 하나 내주지 뭐?’ 하는 생각으로 자식을 망치면 안 되죠.”

유언장, 사후 신탁문제 등에 대해 평소 체계적으로 고민하는 그도 ‘효도계약’에 대해는 회의적이다. “계약서는 소송을 위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부모 자식이 소송할 거리를 만들면 안 되죠. 저만해도 경제적인 게 잘 정리가 되니 가족 간 불화할 일이 없고, 아버님은 봉사, 사회활동 등으로 본인 삶을 즐겁게 누리시니 자주 찾아뵙지는 못해도 종종 안부 여쭙고 존경하며 화목하게 지내요. 자식과도 그런 신뢰 관계가 돼야죠. 또 자식이야 걱정 안 시키고 사회에 폐 안 끼치고 살아주면 그게 효도 아닌가요.”

가족관계 전문가들도 이에 동의한다. 송유미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장(대구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자식은 부모에게서 재산이나 사랑을, 또 부모는 자식에게서 봉양과 효도를 받아내려고만 하는 효도계약은 가족관계 병폐의 일면”이라며 “계약서보다는 어떤 태도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 양육하느냐가 제대로 된 가족관계, 신뢰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서로 돌보고 위하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하지 않은 가족들, 즉 계약서를 쓰는 가족은 신뢰 관계가 무너져 있다고 봐요. 아무리 부모가 논밭을 다 팔아 끊임없이 도와줘도 그때뿐이고, 제대로 된 효나 부양을 기대하기 어렵겠죠.”

송 소장은 화목의 대전제는 ‘계약’이 아니라 감정적 독립이라고 조언한다. “충분히 사랑받고 건강하게 자란 사람은 남에게 계속 받으려고만 요구하기보다 스스로 행복할 동력을 지니죠. 서로에게 영혼의 안식처, 심리적 정거장이 돼 준다면 자녀들은 오지 말라고 해도 결국엔 부모를 찾게 되지 않을까요.”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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