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기억될 뿐, 되돌려지지 않는다. 강원도 폐광 지역만큼 단기간에 영화를 누리고, 급격히 쇠락의 길로 접어든 곳도 드물다. 영광의 시간이 무한정 지속되지 않는 것처럼, 회복하기 힘들 것 같던 상처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치유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더러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일지라도 시간은 그렇게 아픔을 덮는다.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이 시행된 지 어언 30년, 새로운 시간이 켜켜이 쌓여 가는 정선의 탄광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만항재에서 함백역까지 석탄을 실은 트럭이 부지런히 오갔던 해발 1,000m 천상의 길, 이른바 ‘운탄고도’는 여름 무더위를 이기는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꽃 꺾으며 오르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국민학교
운탄고도는 고한읍 만항재에서 신동읍 함백역(40Km)까지 연결된 산중 도로다. 말 그대로 ‘석탄을 나르던 옛 길(運炭古道)’이라는 뜻이지만, 요즘은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는 고원 길(雲坦高道)’이라는 의미로 더 알려졌다. 모두 석탄을 실은 트럭이 운행을 멈춘 이후 얻은 명칭이다. 이름만 들으면 꽤 낭만적이지만 길을 낸 과정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이 길은 5·16 쿠데타 세력이 1962년 국토건설본부를 개편해 발족한 ‘국토건설단’에서 개설했다. 국토건설단은 병역미필자를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불량배나 부랑아들을 강제 징집해 군대식 편제와 규율 아래 노역을 시키는 형식으로 운영됐다. 하기야 ‘산업전사’라는 그럴듯한 포장도 결국 국가 폭력의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
사북읍에서 운탄고도의 중간지점인 화절령으로 오르는 산 중턱까지는 2차선 포장도로가 말끔하게 닦여 있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도롱이연못과 화절령으로 갈라지는 비포장 길이 이어진다. 집도 절도 없는(중간쯤에 최근에 생긴 작은 암자가 있기는 하다) 이곳에 번듯하게 도로가 난 이유는 산기슭마다 탄광촌이 들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건물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시커먼 석탄 잔해 위에 계단식으로 닦은 좁은 땅이 집터였음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검은 흙과 자갈이 뒤섞인 화절령 가는 길을 오르다 보면, 왼편 풀섶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기념비가 놓여 있다. ‘이곳은 운락국민학교가 소재하던 곳으로서 1967. 3. 1 설립되어 22회 544명의 학생이 졸업하였고, 폐광으로 인한 이주 현상으로 1991. 2. 28 폐교되어 본 건물을 철거하게 되었습니다.’ 1994년 정선교육청에서 세운 비석에 쓰인 글귀다.
휴대폰에서 해발고도를 표시하는 앱을 켜서 확인하니 1,080m다. 이 정도면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학교였으리라. 폐교한 지 27년이 흐른 지금,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가득했을 운동장에는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 바람에 일렁거리고 있었다. 짙은 비구름에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첩첩이 겹쳐진 백두대간의 능선이 발아래 펼쳐지는 위치다. “방과 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여자 아이들의 품에는 늘 산나물이 그득하였고, 집에 줄줄이 있는 동생도 그들의 몫이었지요. 남자 아이들은 이 산 저 산을 제 안마당모양 뛰어 놀았고, 길가에조차 흔하던 머루를 지천으로 따먹던 그 시절… 다래를 담은 자루가 방 아랫목을 차지하곤 했고, 계곡 작은 실개천 가에는 물기를 머금은 오미자가 빨갛게 익어 그 새콤달콤한 맛을 자랑했지요.” ‘화절령 그리운 친구들-운락국민학교 제8회’라는 인터넷 카페에서 엿본 산상 학교 아이들의 일상이다.
화절령은 운락국민학교 바로 뒤편이다. 봄철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온 산에 만발해 꽃을 꺾으며 올랐다고 해서 ‘꽃꺾이재’라고도 부른다. 석탄 트럭이 지날 때마다 검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운탄길을 따라 학교를 오갔을 아이들이 분홍 참꽃을 한 움큼 따다가 입에 넣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만항재에서 20km, 새비재(타임캡슐공원)에서 17km 거리의 화절령은 정선 사북읍과 영월 중동면의 경계이기도 해 네 방향으로 길이 나 있다. 예까지 올랐으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보다 만항재 쪽으로 약 1km 정도를 걸어 도롱이연못을 거쳐 내려가는 편이 좋다. 길은 능선을 따라 나 있기 때문에 평지나 다름없다. 흙먼지와 석탄 가루로 뒤덮였을 길은 30여년 세월에 울창한 숲으로 변해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짙은 안개가 스멀스멀 능선을 넘으면 꿈과 현실을 분간하기 힘들다. 하늘과 땅의 경계를 넘나든다. 천상의 산책이 따로 없다.
도롱이연못은 1970년 탄광 갱도의 지반 침하로 생긴 연못이다. 광부의 아내들는 이 연못에 도롱뇽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음을 놓았다고 한다. 하루하루 무사히 넘기기를 바라는 탄광촌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이 모인 곳이다. 낙엽송(일본잎깔나무) 숲이 조성된 연못 주변은 제법 터가 넓어 산상의 정원처럼 아늑하다. 요즘처럼 비가 자주 내리는 철이면 짙은 안개에 뒤덮여 신비로움을 더한다. 물기 머금은 초록 바닥에서 올라오는 풀 내음도 풋풋하다. 도롱이연못에서 만항재 방향으로 조금만 걸으면 ‘1177갱’ 입구다. 해발고도가 그대로 갱도의 이름이다. 고한ㆍ사북지역의 탄광 개발이 시작된 상징적인 곳으로, 갱도 입구에는 일터로 가는 광부 동상이 서 있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사북리 464)에 차를 대고, 화절령을 거쳐 도롱이연못과 1177갱을 돌아오면 약 5km, 3시간을 잡으면 여유롭게 하늘 길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운탄고도는 사북읍내보다 500m 이상 높기 때문에 기온도 5~6도 낮다. 날씨도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한여름이라도 바람막이와 비옷 정도는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슬로프 뒤덮은 순백의 야생화
백운산 능선 운탄고도의 북측 산자락에는 하이원리조트가 들어섰다. 리조트에서 개설한 ‘하늘길’은 운탄고도와 연결되고 일부 겹치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 산을 오르기 부담스러우면 ‘마운틴콘도’에서 ‘마운틴탑’까지는 운행하는 곤돌라를 이용하면 한결 수월하게 운탄고도에 닿을 수 있다. 정선과 태백지역 백두대간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곤돌라를 타면 12분 만에 산 정상에 닿는다. 주변 둘레길에는 2016년 세계 명상대회가 열린 ‘명상쉼터’가 있고, 작은 규모지만 먹이주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양떼 목장도 있다. 슬로프 꼭대기인 마운틴탑에서 도롱이연못까지는 약 1.5km로 완만한 내리막이다.
운탄고도 대신 슬로프 관리용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오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겨울철 순백의 설원에는 지금 막바지로 치닫는 샤스타데이지가 하얗게 덮였다. 샤스타데이지가 지고 나면 금계국과 루드베키아가 샛노랗게 슬로프를 장식한다. 사이사이에 쑥부쟁이와 천인국 패랭이 원추리 달맞이 동자꽃 전동싸리 등 야생화가 뒤섞여 화려함을 더한다. 이곳 슬로프는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마다 색깔을 달리하며 대규모 꽃밭으로 변신한다. 스키장을 완공한 다음해인 2007년 45억원을 들여 80여종의 꽃씨를 살포했기 때문이다. 제 살을 내어 준 숲과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다. 고지대인만큼 개화시기가 짧은데 비해 꽃 색깔은 한결 선명하다.
산상의 꽃밭에 풍덩 빠지고 싶다면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하늘길 카트투어’를 이용해도 좋다. 개화 상황에 따라 코스를 바꿔 가며 10월 초까지 꽃 길을 찾아간다. 약 50분간 숲 해설가가 투어 매니저로 동행해 꽃과 수목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추억이 담긴 사진도 찍어 준다.
함백, 그 잊혀져 가는 추억 되살리기
대규모 리조트와 카지노 시설이 들어선 고한과 사북에 비하면 정선 탄광지역의 또 다른 축이었던 함백은 잊혀진 곳이나 마찬가지다. 번성했던 그 시절, 그 추억의 한 자락이라도 되살리려는 주민들의 노력이 차라리 눈물겹다.
사북에서 함백으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은 남면 별어곡에서 시작되는 421번 지방도로(자미원길)다. 굴곡이 심하지만 오르막차로까지 갖춰 깔끔한 편인데도 도로에는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다. 두위봉(1470m)과 죽렴산(1059m) 사이 도로 양편으로 스치는 풍경은 마음속에 떠올리는 강원도 산골마을의 모습 그대로다. 산골주민과 외지를 연결하던 자미원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고, 띄엄띄엄 들어선 민가는 스러져가는 빈집이 절반이다. 잡풀이 무성한 묵정밭 사이에 말끔한 고랭지 배추밭이 오히려 신기하게 보일 지경이다.
자미원에서 미륵고개를 넘으면 함백이다. 운탄고도를 넘은 트럭이 수도 없이 석탄을 부렸을 함백역도 폐역의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함백역은 2006년 10월 지역 주민과 아무런 협의 없이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마을의 상징이었던 역을 철거하면서 내부 기록물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고, 명판은 광장 구석에 처박아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신동읍 주민들은 즉각 성금을 모아 건물을 다시 짓기로 하고, ‘함백역 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후 정선군과의 협의를 통해 함백역은 철거된 지 2년 만인 2008년 11월 옛 모습을 되찾았다. 이런 노력으로 함백역과 조동리는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기록사랑마을 1호’로 지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역 인근에 ‘추억의 박물관’과 ‘함백탄광기념공원’이 들어섰지만, 쇠락해 가는 마을을 되살리기에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이곳은 행정구역상 정선 신동읍 조동리지만, 주민들은 안경다리마을이라 부른다. 마을에서 두위봉 자락 단곡계곡으로 가려면 마을 앞을 가로 지르는 철길 아래를 통과해야 한다. 그 철길 굴다리가 안경을 닮았다. 구멍 하나는 차량이 지나고, 다른 하나는 단곡계곡 맑은 물이 흐른다. ‘추억의 박물관’은 안경다리 근처에 있다. ‘함백역, 60년의 기록’을 기본으로, 갖가지 ‘추억의 소품’을 모아 해방과 6ㆍ25전쟁 이후 한국의 근현대사를 전시하고 있다. 내부는 깔끔하지만 좁은 전시장에 우여곡절 많은 한국사를 전부 담겠다는 의욕은 다소 욕심으로 보인다. 박물관 입장료 2,000원은 ‘정선아리랑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바로 옆 ‘시니어 신동다방’의 차 값도 그 가격이다. 신동다방은 마을 어르신들이 번갈아 가며 주방을 맡고 있다. 추억의 영화 포스터 아래 푹신한 소파에서 마시는 석류 차 한잔에 더위를 식힌다.
함백역 인근 함백탄광기념공원은 더욱 쓸쓸하다. 함백광업소에서 석탄을 캐다 순직한 137명의 광부와 화약사고로 목숨을 잃은 26명의 노동자를 기리는 기념공원엔 찾는 이가 없어 잡풀이 무성하다. 공원 중앙의 광부 흉상만이 옛 영광과 아픈 기억을 추억하고 있다.
공원에서 석상 뒤편으로 보이는 능선은 운탄고도 끝자락 새비재이고, 바로 아래에는 ‘타임캡슐공원’이 조성돼 있다. 해발 850m 지점에 홀로 선 소나무를 중심으로 12개월을 의미하는 12개 방사형 블록을 설치하고 타임캡슐을 저장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마지막 장면을 찍은 곳으로, 일정 금액을 내면 연인이든 가족이든 특정한 시기의 아름다운 추억을 저장했다가 꺼내 볼 수 있다. 공원에는 암모나이트와 비행접시를 합친 형상의 카페와 산책로, 주차장을 갖췄다. 무엇보다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시원하다. 영화처럼 ‘견우야~’라고 외치면 겹겹이 메아리가 되어 능선을 넘고 골짜기를 파고 들 것 같다. 안경다리마을에서 타임캡슐공원까지는 구불구불 산길이다. 시멘트 포장이 돼 있지만 폭이 좁아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
안경다리를 통과해 도로가 끝나는 곳에도 ‘석탄더미에 묻힌 꿈’이라는 작은 공원이 있다. 여름 한철, 아는 사람만 아는 피서지다. 작은 인공폭포 옆에는 아름답고도 힘들었던 그 시절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듯, 갱도로 향하는 녹슨 탄차가 놓여 있다. 잊혀져 가는 ‘함백의 꿈’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정선=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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