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재산증식 욕망 투영된 공룡
징벌적 과세ㆍ재건축 규제는 미봉책
강남에 쏠린 투기 욕망 분산시켜야
대개 ‘고향집’ 하면 따뜻한 정을 떠올린다. 집이란 가족끼리 정서를 교감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공간이었으니. 하지만 현대인에게 행복 화목 등 정신적 가치를 담은, 생명을 살아 숨쉬게 하는 생활공간으로서의 집은 사라진 지 오래다. 재산 증식 욕망이 반영된 투기의 대상일 뿐이다. 실제 아파트는 환금성과 재산 증식 효과가 가장 뛰어난 자산이다. 한국은행 자료를 봐도 최근 10년간 아파트 수익률은 60%로 주식과 정기예금(각 41%)을 압도한다. 그 결과는 아파트공화국이다. 한국인 10가구 중 6가구가 아파트에 산다.
내 삶의 궤적도 다를 리 없다. 1990년대 초 서울 상도동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전용 59㎡ 전세 아파트였다. 5년 후 인근에 국민주택 규모의 내 집을 마련했다. 지금은 더 넓은 아파트에 산다. 20평에서 30평, 그리고 40평대로. 586세대 자산 축적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내 또래에겐 아파트 평수를 넓히는 게 삶의 목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북의 번듯한 중대형 아파트에 살더라도, 우리 시선은 늘 강남을 향한다. 재산 증식의 최고봉인 까닭이다. 요즘 강남 집값이 주춤한다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언제 강남 아파트로 갈아타야 하느냐가 큰 관심사다. “정부가 보유세를 인상하고 송파구에 9,500가구(헬리오시티)가 입주하는 올해가 강남 진입의 적기”라는 그럴 듯한 분석도 뒤따른다. 이성적으론 지금 집을 사는 게 바보짓처럼 보인다. 성장률이 떨어지고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드는데 집값만 오를 리 없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내리막길에 들어섰고 실업난과 비정규직 확산으로 젊은층의 주택 수요는 더 줄어들 게 뻔하다. 그래도 강남 아파트라면 생각이 달라진다.
강남은 국내 부동산시장의 흐름을 가늠하는 잣대다. 역대 정부 부동산정책이 늘 강남을 겨냥했던 까닭이다. 문재인 정부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와 보유세 인상, 대출 규제,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도 강남 집값을 잡으려는 의도가 강하다. 특히 강남 재건축은 전국적인 집값 불안의 진앙이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전국 집값은 연평균 4.4% 올랐지만, 강남은 10.4% 올랐다. 같은 기간 강남 재건축단지는 두세 배 폭등했다.
강남 아파트 과열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엇갈린다. 한쪽에선 투기세력을, 다른 쪽에선 고급 주거지에 대한 인간 욕망을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니 해법도 ‘규제’와 ‘공급’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아파트가 수요 공급 조절이 어려운 불완전경쟁 상품이라는 점이다. 수요가 늘어도 공급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해야 하나, 투기와 맞물려 집값이 치솟아도 수요가 늘어나는 비이성적 사례도 많다. 역대 정부에서 상상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강남 집값을 잡는데 실패했던 까닭이다.
재건축이 강남 공급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이긴 하나 집값 안정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강남은 특수한 시장이다. 수요가 강남 주민에 국한되지 않는다. 동작 광진 등 인근은 물론 강북과 수도권, 그리고 전국의 부자들이 호시탐탐 진입을 노리는 곳이다. 학군, 교통여건, 직주 접근성 등이 뛰어나서다. “강남은 공룡이다. 그 공룡에다가 소 몇 마리 먹으라고 던져 준들 배가 차지 않는다.”(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재건축으로 공급을 20~30% 늘려 봤자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얘기다. 오히려 재건축 완화는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세력만 불러들인다. 재건축 딜레마다.
보유세 약효도 마찬가지다. 연간 수억 원의 시세차익을 상쇄할 수 있는 징벌적 과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강남 아파트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분출구이자 전국의 돈을 끌어들이는 공룡이다. 그러니 해법은 강남 아파트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도심 재생을 통해 강북과 수도권에도 명품 주거지를 만들어야 한다. 공교육이 강남의 사교육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으로 돌려줘야 한다. 강남은 두더지게임처럼 때려잡으려 할수록 튀어 오르는 괴물이니.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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