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전쟁 공포→교역 활기’
北관광 호객 경쟁… 대북제재 느슨해져
신의주行 트럭 행렬ㆍ북한인 취업 늘고
신도심 아파트 등 부동산 폭발적 열기
“작년 4월이랑 12월에 왔을 때와 비교해보면 금방 느껴지지 않습니까?”
지난달 28일 북중 교역의 중심도시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를 6개월여만에 다시 찾아 현지 소식통에게 최근 분위기를 묻자 돌아온 반문이다. 실제 그랬다. 단둥의 전반적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전쟁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4월과 12월에 느꼈던 스산함과 위기감 같은 건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북 단일팀 구성, 남ㆍ북ㆍ미 3국간 연쇄 정상회담, 북중 정상 간 세 차례 만남 등은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급격한 변화였다.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자 그는 “4,5년 전만 해도 단둥은 활기 넘치는 기회의 땅이었다”며 “이제 다시 그런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고속철에서 내려 단둥역 광장으로 나올 때부터 색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북한 관광상품을 파는 부스가 설치돼 있었고 꽤 많은 중국인들이 몰려 있었다. 압록강변에 즐비한 소규모 여행사들 사이에서는 북한 관광상품 판매 경쟁도 뜨거웠다. 일부는 압록강변 공원과 중조(中朝)우의교(압록강철교) 인근 등지에서 저렴한 상품이라며 호객행위를 하기도 했다. 중조우의교 인근 중롄(中聯)호텔엔 빈 방이 거의 없었다. 호텔 관계자는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닌데도 방이 꽉 찬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면서 “대부분은 조선(북한) 관광을 다녀오려는 사람들”이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압록강변 공원 근처에 대기하던 무장경찰 장갑차 자리는 관광객들의 통로가 된 지 오래인 듯했다. 압록강변 유람선 선착장 앞에서 몇 벌의 한복을 준비해놓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15위안(약 2,500원)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류완구이(劉萬貴)씨는 “작년만 해도 웬 조선옷이냐고 타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주말이면 사진 찍는 사람이 300명도 넘는다”며 웃었다. 북한 식당들도 최근엔 중국인 손님들이 대거 몰리면서 예약을 하지 않고는 저녁식사를 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한다.
중국과 북한 간 교역량도 상당히 늘어난 것으로 보였다. 중조우의교를 통해 단둥에서 물품을 싣고 신의주로 들어가는 트럭 행렬은 어두컴컴해진 오후 8시 가까이까지 이어졌고, 지난해에는 썰렁하기만 했던 고려 거리의 북한 상품점들도 활기를 되찾은 듯했다. 단둥 해관(세관) 인근의 고려거리에서 만난 한 조선족 무역상은 “요즘 들어 신의주에 거주하는 화교들이 부쩍 많아졌다”면서 “이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건 중국과 조선 간에 거래하는 물량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북한 보따리상들이 많이 찾는 신류(新柳)시장에도 최근 들어 5명 안팎으로 무리를 이룬 북한 보따리상들의 발길이 잦아졌다고 한다. 신류시장 근처의 한 통신사 매장 주인은 “한동안 보이지 않던 조선 거주 화교들이 요즘 한국산 중고폰을 대량으로 사가는 일이 잦다”고 했다. 이들 화교는 신의주와 단둥을 오가며 보따리 무역을 관장하거나 사실상 중국 공안의 묵인 아래 밀무역을 하고 있는데, 중국산에 비해 잔고장이 적은 한국산 중고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북 무역상은 “북한에서 들어오는 물품은 규제가 많아 큰 변화가 없지만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품은 많이 늘고 있다”면서 “다만 작년이나 재작년 일방적으로 계약이 파기돼 돈을 못 받는 일이 많아서 요즘은 ‘보안 계약’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공식 계약서 외에 북중 양쪽의 책임있는 당료급 관계자의 서명이 들어간 이면계약서도 작성한다는 얘기다.
늘어난 건 교역량만이 아니었다. 단둥에서 취업하는 북한 노동자들도 부쩍 늘었다. 신규 취업을 금지하고 계약기간 만료시 북한으로 돌아가도록 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지만 현장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북한 노동자를 중국 공장에 소개해주고 있다는 한 북한 거주 화교는 “취업비자 없이도 친척 방문이나 관광 목적으로 도강증(渡江證)을 받아서 오면 1인당 얼마씩을 받고 공장에 연결해준다”면서 “이 곳 공장들의 인력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공안도 요즘은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북한 식당들이 영업난을 겪으면서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진 여종업원들의 상당수도 사실은 중국 식당이나 커피전문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단둥에 머문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단둥의 현재 분위기는 폭발적인 부동산 열기에서도 확인된다. 완공된 지 4년이 넘도록 아직 개통되지 못한 신압록강대교 인근 신도심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형 아파트단지들이 텅 비어 있었지만 최근엔 베이징(北京)과 산둥(山東)ㆍ저장(浙江)성 등지의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수십 채를 사는 일도 있다고 한다. 또 최근 김 위원장이 찾은 압록강 황금평 인근의 토지에 대한 수요도 꾸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엔 기초공사를 위해 땅을 파다가 멈췄거나 뼈대만 앙상하게 올라갔던 건물들이 부지기수였지만, 올 여름에는 대부분 공사를 재개한 상태였다. 그만큼 수요가 있거나 최소한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현지 중국인들의 북한에 대한 태도도 놀랍도록 변했다. 부인과 3박4일짜리 평양 관광을 갈 예정이라는 한 60대 남성은 지난달 29일 “조선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쏜 건 미국의 위협 때문이었지 않냐”면서 “이젠 예전처럼 중국과 조선이 형제국가로 잘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북소식통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김 위원장이 올 상반기에만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진 사실을 언급하며 “사회주의국가의 속성상 최고 지도부의 행보만으로도 중국인들의 대북 반감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식적으로야 아직 대북제재가 유지되고 있지만 중국 정부의 관리나 통제는 상당 부분 누그러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도 “요즘 들어 해관의 통관검사가 느슨해지고 북한 사람들의 입국도 비교적 수월해졌다”고 전했다. 이 때문인지 단둥역이나 해관 근처에선 이전과 달리 김일성ㆍ김정일 뱃지를 달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북중 양국이 공식 면세지역으로 지정한 호시(互市)무역구는 지난해와 큰 변화가 없었다. 입주 업체도 별로 늘지 않았고 찾아오는 손님도 거의 없어 북한 상품 전시관 등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다. 미국의 압박을 의식한 중국이 공식적인 대북제재를 풀지 않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변화의 조짐은 뚜렷이 감지됐다. 한 북한 상품점 주인은 “요즘은 도매로 물건을 가져가겠다는 문의가 꽤 있어서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면서 “밀무역 상품이 아니어서 안전한데다가, 면세품이니 가격 경쟁력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소식통은 “신압록강대교 북측 도로 건설이 지난 4월 말에 완공됐고 중국도 중앙정부와 랴오닝성정부가 대북제재 완화에 대비한 진출 기업 선정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중국이 미국 동의 없이 대북제재를 완화하거나 중단하지는 않겠지만 관광분야를 대폭 풀어 북한에 돈이 돌게 하고 있고 전반적인 교역량을 늘리면서 숨통을 터주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단둥=글ㆍ사진 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