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 반대하자 압박하려
“사법행정권 남용과 거리 있어”
조사문건 공개할 때 제외시켜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한변호사협회장에 대한 사법부의 뒷조사 정황을 파악하고도 이를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정황을 담은 문건이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410개 문건에 포함돼 있었지만,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계 없다”며 공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조사보고서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410개 문건 가운데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한 하창우 전 대한변협 회장을 압박하는 문건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하 전 회장은 2015년 2월부터 2년간 대한변협 회장을 지냈다. 그는 취임 직후 줄곧 “상고법원은 헌법에 근거가 없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국민 이익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대법관 수를 제한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므로 폐기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맡고 있는 상고심(3심) 사건 중 단순한 사건만을 별도로 맡는 법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하 전 회장을 압박하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대한변협 회장 관련 대응방안’ 등의 문건을 만들었고 일부 실행에 옮긴 정황도 포착됐다. 이 문건에는 대법원 내부전산망을 통해 하 전 회장의 취임 전 변호사 수임내역을 파헤치고, 이를 국세청에 제공해 탈세 정황을 포착하려 하는 등의 방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같은 내용을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 흘려 보도하는 방안도 검토됐는데, 실제 문건 작성 직후 그의 취임 전 수임사건 처리 문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하 전 회장의 정계 진출을 막아야 한다거나 부동산 등 재산내역을 파악한 내용도 포함됐다.
검찰은 이 같은 정보수집이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에 해당한다고 보고, 29일 하 전 회장을 불러 피해자 조사를 벌였다.
더 큰 문제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 또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거리가 있다”는 이유로 특별조사단의 조사대상 410개 문건 중 98개를 공개할 때 이 문건들을 제외한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 문건 작성자를 파악하고도 징계 조치도 하지 않아 논란을 빚고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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