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미인’음악감독 김성수
“작곡은 잘하거나 못하거나 인데, 편곡은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영역이에요. 그래서 곡 쓰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해요. 하지만 이번 작업은 오히려 부담이 덜 했어요. 신중현 선생님의 곡은 여러 시대를 관통하기 때문에 제가 이것저것 시도해볼 수 있었어요.”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미인’은 요즘 “곡이 좋다”는 입소문이 자자하다. 한국 록 음악의 대부 신중현(80)의 명곡들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히트곡을 모아 만든 뮤지컬)이니 그럴 만하다.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불리는 ‘미인’ ‘빗속의 여인’ ‘리듬 속의 그 춤을’ 등 익숙한 곡을 뮤지컬 문법에 맞추면서 풍성하게 구현됐다. ’미인’의 김성수(49) 음악감독을 최근 그의 서초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김 음악감독은 2002년 ‘포비든 플래닛’으로 뮤지컬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한때 한국 인디음악계 대부로 불렸다. 라이너스의 담요, 검정치마, 메이트 등 인기 인디 가수들이 그의 프로듀싱을 거쳤다. 2015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이후 뮤지컬계에서 가장 바쁜 음악감독 중 한 사람이 됐다.
김 음악감독은 창작뮤지컬에서 음악을 작곡하거나, 라이선스 뮤지컬의 경우 편곡을 주로 해왔다. ‘마마 돈 크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그의 손을 거쳤다. ‘페스트’ ‘광화문연가’ ‘오케롤’까지 주크박스 뮤지컬도 여러 번 경험한 그에게 ‘미인’은 조금 특별했다.
“한국 창작뮤지컬 제작 시스템 안에서 편곡자나 작곡가가 창작자로서 참여하는 게 쉽지 않은데” ‘미인’에서는 달랐다. 그는 대본을 받자마자 곡을 무대 위에서 구현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 음악감독은 작품에 넣을 넘버의 장르와 템포를 모두 정해놓고 제작진을 만났다. 편곡자로서 적극적으로 극 제작에 참여한 것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가사가 정해져 있는 곡을 새로운 스토리에 맞추려다 보니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다. ‘미인’ 역시 매 장면의 스토리와 곡이 조화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극의 막바지 주인공 강호가 천황을 위한 곡을 부르라는 일본 형사의 요구를 거부하고 부르는 ‘아름다운 강산’은 관객에게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아름다운 강산’은 무반주로 불린다. 김 음악감독 아이디어다. 노래하는 강호 뒤로는 일본 경찰과 한국 청년들의 싸움이 슬로우 모션으로 구현된다.
김 음악감독은 어릴 때부터 ‘영화 덕후’였다. “저는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시작과 끝 곡을 액자식으로 구성한 것이나 장면 전환 음악을 앞 장면이 끝나기 전에 삽입한 것도 영화 문법에서 따온 거예요.” 영어 가사를 써서 해외에 진출하고 싶다는 생각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그 후 “가장 저렴하게 음악을 배울 수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용음악대학인 뮤지션스 인스티튜트에 입학해 기타를 정식으로 배웠다.
그는 자신이 작업하는 뮤지컬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뮤지컬 스태프로서의 자세라고 강조한다. “궁극적으로는 음악뿐만이 아니라 제가 모든 걸 관장할 수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그럼 정말로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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