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권이사회 탈퇴에 예산도 삭감
러시아 중국, 미국 핑계대며 인력ㆍ예산 축소
세계 최대 국제기구인 유엔(UN)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자국 우선주의가 판을 치면서, 유엔의 주요 업무인 인권개선 및 국제평화유지군 활동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유엔 내부 문서를 인용해,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평화유지군이 운영하는 인권프로그램 예산의 대폭 삭감과 관련 인력 200여명을 감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주로 인권보호와 성적 학대 남용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인력들이다. 구체적으로 러시아는 인권관련 프로그램 예산을 기존보다 50%까지 삭감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방안이 강행될 경우 최대 170명의 관련 분야 유엔 인력이 감축된다. 중국 역시 관련 업무로 분류되는 인력 37명의 자리를 없애겠다는 방침이다.
인권 활동가들은 중ㆍ러의 예산 감축이 유엔 회원국 분담금으로 운영되는 유엔 평화유지군의 현지 구호 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두 나라가 프로그램 삭감을 주장하는 나라들은 콩고, 아이티, 수단 등이다. 인권 유린과 여성들에 대한 성적 학대가 만연하지만 후진적 정치와 사회 체제로, 내부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곳들이다.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투자에 나선 중국이 자국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들 나라의 열악한 인권 문제를 눈감아 주려는 의도가 짙어 보인다. 기본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의식한 탓인지, 국제기구가 회원국 내정에 간여해서는 안 된다는 ‘불개입 원칙’을 견지해 왔다. 인권 예산 관련 회의는 다음달 1일 열리는데 NYT는 회원국들의 합의가 필요한 만큼, 주말 내내 물밑 협상이 치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과 러시아의 강경 행보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두 나라는유엔 예산의 최대 분담국인 미국 핑계를 대고 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중ㆍ러에 앞서 국제기구 무력화를 시도 중이다. 지난해 유네스코(UNESCO)를 탈퇴한 데 이어 최근엔 유엔인권이사회마저 박차고 나와 버렸다. 두 조직이 반(反) 이스라엘 기조를 유지하며 편향적으로 운영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미국이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NYT는 그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며 중심을 잡아 오던 미국이 먼저 유엔 효율화 등을 내세워 예산을 삭감하고 비용 절감을 요구하자, 중국과 러시아도 거침없이 공격적 태도로 돌아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인권단체휴먼라이츠워치의 루이스 샤르보노 유엔 담당자는“유엔 활동의 상당한 제약을 가져오게 될 인권 인프라 축소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침묵으로 동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유엔을 미국이 지켜내야 하지 않겠냐는 촉구지만, 인권이사회를 탈퇴한 미국 입장에선 할 말이 없어 보인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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