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 도입땐 병역자원 손실?
“국방력서 병력 중요성 점차 감소
분단국가 특수성도 정당화 안 돼”
특정 종교로 개종 병역회피 증가?
“국가가 엄격한 사후관리하면 돼
복무기간·난이도 등 형평성 확보”
유·무죄 판단은 대법원 몫으로
“대체복무 없는 처벌 위헌” 명확히
소수자 인권보호 새 지평 예고
종교적 신념 내지 양심에 따른 군 입대나 집총 거부자에게 대체 복무의 길을 막아놓은 현행 병역법이 헌법에 맞지 않다는 헌법재판소 첫 결정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무조건 옥살이하는 시대는 저물게 됐다. 다만, 헌재는 ‘정당한 사유’ 없는 병역 거부자에 대한 처벌조항은 합헌으로 유지하며 유무죄는 대법원 몫으로 넘겼다. ‘판례 변경 필요’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놓인 점에 비춰 소수자 인권 보호의 새 지평을 여는 역사적 판결이 이날 헌재 결정과 어우러져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헌재는 28일 병역 종류를 열거해둔 병역법 5조 1항을 두고 재판관 6 대 3의 턱걸이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위헌 관련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는 재판관 6명이다. 헌재는 당초 핵심 심판 대상으로 간주된 처벌조항인 병역법 88조 1항 대신 병역 종류에 무게를 싣는 판단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형사적 단죄 구제책을 꺼냈다.
이진성 헌재소장과 김이수 강일원 서기석 이선애 유남석 재판관은 병역법 5조에 열거된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 등을 두고 “모두 군사훈련을 전제로 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군 복무자와 형평성을 맞추는 형태의 대체 복무로 헌법상 국방의 의무를 짊어지려 해도 입법적 제한으로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만 침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논의돼온 대체복무제는 병역의무를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데 비해 양심의 자유를 덜 침해하는 수단임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다수 재판관들은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병역자원 손실이 발생한다는 우려도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전체 국방력에서 병역 자원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점차 떨어지는 현실과 그들을 처벌한다 해도 교도소에 수감할 뿐 병역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점 등을 들었다. 그들의 수(광복 이후 2017년까지 병역거부로 처벌 받은 이는 약 2만명)가 국방력에 의미 있는 수준의 영향을 준다고 보긴 어렵다고 봤다. 따라서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 양심적 병역거부 심판 때 합헌 결정의 핵심 논리였던 ‘유일한 분단국가의 특수한 안보상황’을 들어 대체복무제 도입을 안 하거나 미루는 게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정 종교로 개종해 허위로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일축했다. 재판관들은 “국가가 관리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전심사절차와 엄격한 사후관리절차를 갖추면 된다”고 봤다. 현역복무와 대체복무 사이 난이도나 기간의 형평성을 확보해 현역 회피 요인을 제거하면 심사의 어려움과 양심을 빙자한 병역기피자 증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이전에는 병역 종류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이 없어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대체복무제 도입 권고만 밝혔지만 이번에는 헌법불합치 판단으로 국회의 입법 의무를 강제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수 재판관은 “2004년 대체복무 도입을 권고했으나 14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다”며 “모든 사정을 감안할 때 국가는 기본권 침해 상황을 제거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병역거부자 처벌조항은 위헌 결정 정족수 미달로 합헌이 유지됐다. 이진성 김이수 이선애 유남석 등 재판관 4명은 “병역종류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했으면 처벌조항 중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부분도 위헌 결정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위헌 의견을 실었다.
합헌 논리에는 법 조항상 모든 병역기피자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아니어서 처벌조항 자체가 양심의 자유를 박탈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판단이 깔렸다. 다만, 합헌 뜻을 밝힌 강일원 서기석 재판관도 “처벌문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조항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 법원의 법률해석과 판단으로 발생한다”고 밝혀 굳이 위헌 판단 없이 법원이 무죄 선고하면 된다는 취지를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두 재판관 의견까지 더하면 사실상 대체복무가 없는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헌재 판단이 나온 셈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법원도 다가올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무죄를 선고할 것으로 내다보는 법조계 시각도 있다. 하급심에서 약 90건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단이 난 점도 헌재는 들었다.
반면, 안창호 조용호 재판관은 “대체복무는 국방의무에 포섭될 수 없고, 안보상황은 엄중하며, 양심을 빙자한 병역기피자를 심사로 가려내기 어렵다”는 의견(병역종류 각하, 처벌조항 합헌)을 냈다. 김창종 재판관은 둘 다 심판 대상이 안 된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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