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전 결승골에 철벽 수비 만점 활약
이영표 “평생 까방권 주고 싶다”
비판의 중심에서 국민 영웅으로
세기의 대이변을 일으킨 축구 대표팀 중앙수비수 김영권(28ㆍ광저우 에버그란데)이 ‘국민 욕받이’에서 ‘국민 영웅’으로 수직 상승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기간 안정적인 수비와 몸을 날리는 투지 그리고 결정적인 한 방까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모두 쏟아내며 한국 축구에 희망을 안겼다. 특히 27일(현지시간) 대회 F조 최종전에서 ‘전차군단’ 독일을 2-0으로 격침시키는 결승골과 상대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철벽 수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제가 줄 수 있다면 평생 ‘까방권’(잘못에 대한 비난을 면제받는다는 뜻의 속어 ‘까임방지권’의 준말)을 주고 싶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그 동안 김영권은 대표팀의 고질적인 수비 불안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비판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해 8월 이란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차전을 마친 뒤엔 “관중(6만 명)의 함성이 크다 보니 의사소통이 잘 안 됐다”며 졸전을 관중 탓으로 돌리는 듯한 인터뷰로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어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다.
하지만 시련은 김영권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김영권은 독일과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울먹이며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해줘 고맙다”면서 “4년 동안 힘들었는데 이번 월드컵을 통해 힘들었던 것이 조금이나마 나아져 다행”이라고 밝혔다. 그는 힘겨웠던 지난 시간에 대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며 “비난이 나를 발전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영권이 러시아에서 명예회복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은사들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 대학 시절 지나친 승부욕과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졌던 김영권을 한층 더 성숙한 선수로 성장시킨 정진혁 전주대 감독은 제자가 이란전 인터뷰로 힘든 시기를 겪었을 때 전화를 걸어 “잊어버려라. 나중에 좋은 경기를 보여주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직설적으로 하지 말고, 한번 더 생각하고 신중하게 말하면 된다”고 위로했다.
정 감독은 28일 “지난 시련을 통해 인생공부가 됐고, 그래서 지금의 김영권도 있다”며 “말주변이 없던 아이였는데, 방송 인터뷰 때 울면서도 말을 예쁘게 잘하더라. 우는 모습을 보니 뭉클했다”고 말했다.
전주 해성중 3학년 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가고 전주에 홀로 남은 김영권을 아들처럼 챙겼던 강원길 전주공고 감독은 “마음의 상처가 있어 고생을 많이 했고, 월드컵에 나가기 전 통화할 때 몸이 안 좋아 걱정된다고 했다”며 “우려와는 달리 최선을 다해 멋진 모습을 보여줘 고맙다”고 기특해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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