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참여한 이동기 교수 평가
유럽 중심의 국가 간 경계 넘어
세계가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
정치, 경제 등 나열식 서술 탈피
생태, 이주, 일상, 문화 등
다양한 얘기를 적극 끌어들여
“세계사 서술이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은 많았지요. 그런데 그런 책이 대체 어떤 것이냐에 대해선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이 책은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세계사 서술이란 바로 이런 것이야, 라고 거의 최초로 보여주는 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28일 ‘하버드 C.H.베크 세계사’(이하 ‘세계사’) 번역에 참여한 이동기 강릉원주대 교수의 설명이다. ‘세계사’는 미국의 하버드대 출판부, 독일의 유력 출판사 C.H.베크가 함께 만드는 책이다. 1권 ‘600 이전 초기문명’, 2권 ‘600~1350 농경민과 유목민의 도전’, 3권 ‘1350~1750 세계제국과 바다’, 4권 ‘1750~1870 현대세계로 가는 길’, 5권 ‘1870~1945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 6권 ‘1945 이후 서로 의존하는 세계’ 등 모두 6권이다.
2012년 시작돼 영어판은 3ㆍ4ㆍ5ㆍ6권이, 독어판은 1ㆍ3ㆍ4ㆍ5ㆍ6권이 출간됐다. 이번에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 건 근대 시기를 다룬 5ㆍ6권이다. 나오긴 했는데, 책 한 권 기본 페이지 수가 1,000쪽이다. 세계사 책은, 요점 정리 해주겠다는 이런저런 책들까지 합치면 이미 차고도 넘친다. 이 상황에서 왜 이리도 묵직한 책이 나왔어야 했을까. “서구에서는 출간되자마자 세계사 서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격찬이 쏟아졌고, 구해보니 실제로 그랬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책의 의미는.
“서구중심주의를 깨자는 얘기는 오래됐다. 그래서 여러 시도들이 있었는데, 그 시도 또한 ‘19세기 제국주의’, ‘20세기 냉전’ 하는 식으로 특정 시기와 주제에 몰리거나, 몇몇 문명권 중심으로 쓰면서 ‘문명과 주변’이라는 도식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이 책은 그 틀을 깬 첫 작품이다. 기존 정치, 경제, 군사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났다. 생태, 이주, 일상, 문화 등에 대한 얘기들을 적극 끌어들인 종합적 서술로도 아주 훌륭하다.”
-원동력은 어디 있나.
“편집진을 꼽고 싶다. 미국, 독일의 두 책임편집자는 이리에 아키라 하버드대 교수, 위르겐 오스터함멜 콘스탄츠대 교수다. 둘 다 세계 역사학계의 권위자다. 아키라 교수는 이름에서 보듯 일본인이자 동시에 미국역사학회장까지 지낸 사람이고, 오스터함멜 교수는 독일 사람이지만 중국사 전공자다.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난 글로벌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세계사’에 견줄 만하다.”
-이들의 관점은 무엇인가.
“국가 간 경계를 넘어서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심과 주변’이란 이분법 대신 모두가 중심이고, 모두가 주변이라 보는 거다. 그러니 서술 방식이 특이하다. 예를 들어 6권 ‘서로 의존하는 세계’에서 세계화 문제를 다룰 때 경제 지표나 구조 같은, 뻔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대신 LA다저스의 투수 노모 히데오 얘길 꺼내면서 미국 프로야구를 안방 TV로 본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방식이다.”
-그래도 서구 얘기가 뼈대다.
“지금 세계가 서구 중심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분량 면에서 비서구 부분이 대폭 늘었고, 서구에 대한 얘기라 해도 반드시 다른 지역에 대한 얘기와 연결 지을 뿐 아니라, 비서구를 종속적인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인 행위자로 서술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최소한 ‘미국은 이랬다, 그때 유럽은 이랬다, 그때 중국은 이랬다’는 식으로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바람에, 다 읽고 나서도 ‘읽긴 했는데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서술이다. 이민, 상품, 문화, 에너지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서구와 비서구를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해 아주 매력적으로 서술했다.”
-그래선지 서술 톤도 무척 문학적이다.
“아무래도 객관적인 서술을 위해 정치 경제적 큰 사건이나 통계수치 같은 걸 나열하는 기존 세계사 책에 비해서는 훨씬 부드럽고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그건 집필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연결의 관점은 제국주의 미화란 비판이 따라붙는다.
“아무래도 상호작용을 강조하면 ‘그러면 제국주의와 식민지도 교류냐’ ‘글로벌 차원의 불평등 문제 같은 것도 교류냐’ 하는 식의, 무비판적인 접근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착취, 억압, 비용, 고통은 간과한다는 지적이다.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책임편집자를 비롯해 서술에 참여한 학자들이 대개 비판적 자유주의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거기서도 일정 부분 자유롭다.”
-아쉬운 점은.
“물론 있다. 서구 입장에서야 ‘이 정도면 비서구를 잘 포괄했다’ 할지 모르겠으나, 남미나 아프리카 부분은 제법 아쉽다. 우리 입장에선 그래도 좋은 게, 두 책임 편집자가 아시아와 인연이 깊어서인지 아시아에 대해서는 분량 못지않게 아주 깊고 풍부한 이해를 보여준다.”
하버드 C.H. 베크 세계사 5ㆍ6권
이리에 아키아 등 지음ㆍ이동기 등 옮김
민음사 발행ㆍ각 1,300쪽, 1,040쪽ㆍ각 5만8,000원, 5만3,000원
-이런 서술을 우리도 해야 한다는 말은 많았다.
“자국중심주의,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적 시야를 가진 역사서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들은 많았다. 문제는 ‘어떻게’였는데, 거기에 참고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꼭 그런 문제가 아니어도, 남북화해 분위기를 타고 열차로, 자동차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 여행하는 꿈이 현실화된다는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다른 단편적인 그 어떤 책보다 이 책은 그 꿈에 가장 가까운 역사책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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