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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여성들, 한국 드라마 보며 남성상도 달라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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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여성들, 한국 드라마 보며 남성상도 달라졌죠”

입력
2018.06.29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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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출신 웹툰 작가 최성국

오늘 두산아트센터서 막 올리는

뮤지컬 ‘국경의 남쪽’ 대본 작업

北서 애니메이터로 일하다 탈북

웹툰 ‘로동심문’으로 이름 알려

영화ㆍ방송계선 ‘북한 말 선생님’

“남북 통일에 부담 갖지 말고

한류로 문화 공감부터 이뤄야”

최성국 작가는 올해 남북의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공연기획사를 차렸다. “문화가 교류되면 통일이 빨라질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최성국 작가는 올해 남북의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공연기획사를 차렸다. “문화가 교류되면 통일이 빨라질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때 제가 주변에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북한에 한류 문화 많이 소개하게 나한테 비행기 한 대 값만 주라. 7년 안에 북한 허물 수 있다.’ 북한에 한류가 들어가면서 관련 직업이 엄청나게 많아졌어요. 중산층이 많아지면 북한도 달라져요.”

2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웹툰작가 최성국(39)씨는 자신있게 말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최씨는 북한 애니메이션 제작소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에서 원도가(애니메이터)로 일하다 2010년 한국에 들어왔다. 2016년부터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그린 웹툰 ‘로동심문’을 연재하며 일반에 이름을 알렸다. 주업은 웹툰 작가이지만 방송영화계에서는 ‘북한 말 선생님’으로 통한다. 연극 ‘목란언니’를 비롯해 하반기 개봉예정인 강형철 감독의 영화 ‘스윙키즈’ 등 북한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배우들의 북한말 발음을 가르쳤다. 웹툰 작가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함경도 출신이 탈북자의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정작 북한의 표준어인 ‘평양말’을 제대로 구사하는 탈북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씨는 “남한에서 ‘북한말’로 소개되는 발음 중 상당수는 조선족 말투”라며 “평양말은 북한 다른 지역보다 발음이 더 부드럽다. 북한의 표준어라서 남한 사람들이 처음 들어본 단어라도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듣는다”고 말했다.

29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국경의 남쪽’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최 씨는 “2년 전 이 작품을 초연하면서 ‘북한 말 선생님’으로 데뷔했다. 웹툰을 본 기획자가 연락 왔는데, ‘같은 분야’의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심장이 뛰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원도가가 만화 그리는 장면을 감독 앞에서 직접 연기해요. 쥐 나오는 장면을 그리면 쥐를 연기하는 거죠. 감독이 오케이하면 촬영 비디오를 보고 참조해서 그려요.” 요컨대 북한 애니메이터는 연기자인 동시에 애니메이션 작가인 셈이다. 그는 “제일 쉬운 연기는 액션”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평양과 평양이 아닌 곳으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북한에서 평양은 모든 특권이 집약된 장소다. 평양미술대학 출신의 “남한으로 치면 삼성 현대 정도로 인기 있는” 영화촬영소 직원이었던 최씨에게 출신성분을 물으니 “완전 평민”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어머니가 평양에 시집가겠다고 했대요. 아버지 연고는 함경남도인데 의붓자식으로 평양집에 들어갔고, 두 분이 결혼하시면서 쭉 평양에 산거죠.” 중학생 시절 ‘6ㆍ25 반미 투쟁기간’에 그린 충성 선전물을 본 담임과 교장이 “교육 잘해서 학생이 그림을 잘 그린다고 여기저기에 자랑을 했고” 이를 들은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최씨에게 4ㆍ26만화영화촬영소 취업 시험을 치르게 했다. 어머니의 혜안과 교사들의 공치사가 그에게 특권 계급의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뮤지컬 배우에게 평양말 가르치는 탈북자 출신 웹툰작가 최성국. 홍인기 기자
뮤지컬 배우에게 평양말 가르치는 탈북자 출신 웹툰작가 최성국. 홍인기 기자

“흰 쌀, 식용유, 쇠고기가 배급되는” 직장생활이었지만 같은 일을 하는 해외 애니메이터들의 수입을 알자 더 욕심이 생겼다. 중국에서 들여온 중고 컴퓨터에서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는 한국 영화, 드라마 등을 복제해 몰래 팔았다가 적발돼 3번의 감옥살이 끝에 아버지 고향 함경남도로 추방된 게 27세 무렵. 이때 탈북을 결심했다. “한국 드라마, 영화, 가요 인기 아주 많지만 그대로 유통하진 않아요. ‘장군의 아들’이랑 ‘아라한 장풍대작전’ 같은 서로 다른 영화를 북한 정서에 맞게 새로 편집해서 돌리는 거죠. 저 ‘남북에 하나밖에 없는 감독’이에요(웃음).”

한국 영화 드라마를 편집하며 익힌 컴퓨터 실력 덕분에 그래픽 자격시험인 GTQ에도 단번에 합격, 탈북 후 처음에는 소프트웨어 회사에 취직했다. “웹툰 그리는 기술보다는 시나리오 쓰는 게 힘들었죠. 남한 유머를 몰랐으니까. 요즘도 스토리를 ‘포만감이 들게’ 쓰는 게 어려워요.”

평양과 평양 아닌 북한을 모두 살아본 최씨는 뮤지컬 ‘국경의 남쪽’ 대본이 “남한의 고위급 정치인보다 더 북한을 잘 알고 쓴 현실적인 대본”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평양시민 중에서도 엘리트인 주인공 선호의 집 주소는 ‘평양시 중구역 류성 1동 백공칠반 칠현관’인데, 우리로 치면 도곡동 타워팰리스 정도 되는 집이란다.

2006년 개봉한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국경의 남쪽’은 만수예술단 호른 연주자인 선호와 연인 연화가 남한으로 탈북하며 겪는 사연을 그린다. 연인을 보려고 목숨걸고 탈북한 연화가 남한 여자 경주에게 선호를 보내준다는 설정은 “(영화 개봉했던)10년 전과 달리 요즘은 충분히 리얼리티가 있”단다. “한국 드라마 보면서 북한 여성들이 좋아하는 남성상도 달라졌어요. 내가 드라마에서 본 한국남자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기도 하죠.” 디테일까지 살아있지만 초연 당시 “틀린 건 아닌데 실제로 쓰지 않는 북한말”이 많아 배우 연습 전 대본부터 뜯어 고쳤다. 재공연을 앞둔 이번 연습 기간에도 일부 에피소드를 바꿨다.

“남한 사람들은 통일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던데, 북한 체제를 제대로 알면 그렇지 않아요. 엄청난 기회가 열릴 겁니다. 이런 문화교류가 중요해요. 뮤지컬 주인공만 봐도 사람들이 북한이 어떤지 판단할 수 있겠죠. 문화 공감이 핵폭탄보다 강해요. 제가 경험했잖아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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