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 열기로 뜨겁던 지난 4일, 충북에는 선거 쟁점보다 더 뜨거운 뉴스가 전해졌다. 경북 상주시 문장대온천 개발 지주조합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대구지방환경청이 반려했다는 소식이었다. 오랫동안 온천개발 반대 운동을 벌여온 충북 측은 즉각 환호했다. 충북도내 지자체와 지역 시민·환경단체들은 “문장대 온천 개발이 사실상 백지화됐다”고 일제히 환영했다. 반면 개발을 밀어붙이던 경북 쪽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적잖이 당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양 지역의 희비를 가른 문장대온천 개발 논란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온천 개발 붐이 일던 1985년 속리산 문장대 인근의 경북 상주시 화북면 일대가 온천지구로 지정된다. 1989년 온천관광지 조성계획이 승인되고, 지주조합은 종합 온천장과 스파랜드 건립 구상을 내놨다. 이 때부터 지역 갈등이 불거졌다. 충북도와 충북지역 환경단체들은 하류인 괴산군·충주시 등 남한강 수계 오염이 우려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온천개발저지 도민대책위가 꾸려지고 반대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다. 지주조합은 개발저지에 나선 충북 주민을 공사방해혐의로 고발하는 등 강대강으로 맞섰다. 갈등은 법정 싸움으로 번져 2차례나 대법원까지 가는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심리만 450회 이상 진행된 지루한 소모전이었다. 그러는 사이 양 지역 민심은 멀어지고 갈라졌다.
한데, 과연 이 온천 개발 논란이 이웃 간 반목을 부추기며 30년이나 끌어올 문제였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진즉에 해결할 수 있던’ 일이었다.
이번에 대구지방환경청이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한 이유는 문장대온천 개발 사업 자체가 법적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사업허가 취소 이후 2년 안에 다시 허가를 받아야 관광지 조성계획이 유효하다. 그런데 지주조합은 2009년 10월 대법원 판결로 사업허가가 취소된 뒤 2년 간 재허가를 신청하지 않았다. 결국 2011년 10월 이후 문장대온천 조성 계획은 휴지 조각이 됐고, 이 계획을 기초로 한 환경영향평가는 법적 근거를 잃었다.
갈등 당사자들이 이런 규정만 알았더라도 법적 효력이 사라진 7년 전 당시 논란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충북도와 경북도, 상주시 등 지자체는 물론 지주조합, 환경단체까지 모두가 이런 규정을 간과하고 있었다. 무지와 정보부재 속에 2013년부터 지주조합의 문장대온천 개발이 재추진 됐고 환경단체들은 ‘습관처럼’ 다시 저지투쟁에 돌입했다. 그렇게 상생의 기회는 날아가버렸다.
더 일찍 이 문제를 해결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바로 온천법 개정을 통해서다. 문장대온천 개발이 전국적인 환경 이슈로 떠오른 1990년대 중반부터 환경단체들은 온천법 개정을 적극 요구하고 나섰다. 현행 온천법의 온천수 기준을 크게 강화해 무분별한 온천 개발을 막자는 것이 개정안의 뼈대다. 그러나 법안은 20년이 넘도록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온천법 개정과 물관리 일원화를 위해 온천 업무를 행정안전부에서 환경부로 이관할 것도 촉구해왔다. 하지만 이 요구도 부처 이기주의에 밀려 공허한 외침에 그치고 있다.
“이번 환경영향평가 반려로 문장대온천 개발이 완전히 무산됐다고 보긴 어려워요. 개발 이익을 노리고 땅을 산 지주들이 그대로 사업을 포기하진 않을 테니까요. 결국 불합리한 온천법을 개정하고 친환경 방식으로 개발을 유도하는 것만이 무모한 개발을 막고 지역 갈등을 해소하는 길입니다.”
한 지역 환경운동가의 말에 이제라도 정치권과 정부가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또 기회를 놓치면 30년을 이어온 지역갈등이 고착화할지도 모른다. 갈등의 골이 깊을수록 치유의 길은 더 멀고 험한 법이다.
한덕동 대전취재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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