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단들, 중견이나 외국인 선호
코리안심포니, 차세대 차웅 발탁
서울시향은 부지휘자 도입 실험
신선한 색깔 보여 주며 새바람
"부지휘자 제도 도입 등 필요"
“지휘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레퍼토리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죠. 저뿐만 아니라 다른 지휘자들도 이 무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교향곡 7번 등을 선보인 지휘자는 30대 청년이었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열린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위 없는 2위에 오른 지휘자 차웅(34)이다. 차웅은 코리안심포니 기획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협연을 위한 기악 연주자가 아닌 차세대 지휘자를 발탁해 메인 연주회로 소개하기는 국내에선 드문 경우다.
지휘자에게도 메인 콘서트홀 무대는 소중한 경험이다. 유학을 떠난 뒤 해외에서 활동하거나 콩쿠르 우승을 알린 젊은 지휘자들이 늘고 있지만, 국내에서 그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기회는 많지 않다. 대부분 악단은 나이 많은 지휘자를 선호한다. 경험과 연륜으로 악단의 수준을 높여 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최근 들어 지방 악단의 외국인 상임지휘자가 늘어난 것도 같은 이유다.
피아노, 바이올린 등 기악 분야에서는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 불리며 주목받는 연주자가 있지만, 지휘는 ‘신동 신드롬’이 있을 수 없다. 활동이 무르익기까지 꼬박 20년은 걸린다. 20세 때 공부를 시작해도 마흔에야 활발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국내 지휘 교육시스템이 자리 잡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정명훈(65) 지휘자처럼 기악을 전공하다가 지휘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주목받는 젊은 지휘자들은 서울대,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양대 등 대학에 지휘 전공이라는 씨앗이 뿌려진 뒤 싹을 틔우고 있는 사례다.
지휘자로서 교육을 받았다 해도 졸업 후 바로 교향악단을 이끌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야 하는 지휘자에게 무대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는 건 해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젊은 지휘자에게 순서가 잘 돌아오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나온다. 노승림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중견 지휘자들이 기득권을 놓는 것도 쉽지 않고, 젊은 지휘자가 두각을 나타내기에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국내에서는 김광현(37) 원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최수열(39) 부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30대에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맡았던 성시연(42) 지휘자 등이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교향악단도 성장 중인 단계다. 악단을 통해 젊은 지휘자가 성장하기 보다는 악단을 키워 줄 상임지휘자를 더 필요로 한다는 얘기다. 이상적인 방법은 노장 지휘자가 상임으로 악단을 이끌고 젊은 부지휘자가 신선한 색깔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성시연, 최수열 지휘자가 부지휘자를 맡아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모두 성장케 하는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부지휘자를 두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난해 부지휘자로 윤현진(36) 지휘자를 임용한 KBS교향악단은 창단 이후 61년 만에 처음으로 부지휘자 직위가 생겼다.
지휘자 연령은 교향악단의 개성에 따라 다르다. 독일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실험성이 강한 악단으로 꼽힌다. 베를린필의 새로운 수장인 키릴 페트렌코(46)도 파격적인 인선이었다. 반면 오스트리아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보수적인 악단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젊은 지휘자들의 등용문이 우리나라보다는 열려 있다는 평이다. 독일 울름시립극장 수석지휘자 지중배(36),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롤주립극장 수석지휘자 홍석원(36), 스페인 왕립극장 부지휘자 김은선(38) 등이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다.
서울시향과 코리안심포니 등은 공익과 교육 목적의 공연을 통해 젊은 지휘자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안정적인 활동의 기회는 실력 있는 지휘자들 수에 비해선 턱없이 적다. 노승림 전문위원은 “지휘자 육성을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국제콩쿠르를 만드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차웅 지휘자는 “독일은 연령 28세 미만의 지휘자들에게 오디션을 통해 프로 교향악단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며 “지휘는 방 안에서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직접 들어보고 동시대 음악가들과 논의할 경험 자체가 또 다른 기회와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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