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하는 정치 얘기 나라도 안 하고 싶지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가 요즘 자유한국당 유행어라 하니 한발 걸친다. 알다시피 이 말은 리영희 선생이 김영삼 정권 출범 직후 낸 책의 제목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졌으니 이제 좌파도 복권시키자는 이야기다. 마오주의에 경도되어 문재인 대통령 등 1970년대 젊은이들을 오도했다는 ‘의식화의 원흉’ 리영희 선생의 문장을, 우파가 쓰다니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좌우’는 잘 팔리는 레토릭이다. 진영논리는 우리 피를 끓게 해서다. 진영논리의 묘미는 진영이 진짜 대립한다는 게 아니라, 이 복잡한 세계를 단순화시켜서 재빨리 이해하는데 도움 준다는 데 있다. 불편함을 가장 빨리, 편안하게 처리하는 방법은 ‘네 탓’이다. 너는 엉터리, 나는 정의의 사도, 세상이 대체 왜 이래 라며 울부짖으면 된다.
논리치곤 희한한데 효능은 크다. 소속감은 안도감을 준다. 좀 거칠게 주장해도 자기네 편에선 용인된다. 아니, 멋지게 분노하면 골목대장 노릇도 할 수 있다. 세상은 대개 아이러니한 회색인데, 진영 색깔이 선명한 건 이 때문이다. 다 떠나서, 지금 남북미 협상이나 소득주도 성장만 해도 이게 박근혜 정권 때의 일이었다면 자칭 보수들은 뭐라고들 할까.
좌우 놀음에 지친 판화가 이철수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새는 온 몸으로 난다’란 말을 제안했다. 좌우가 어쩌고 요란하게 날개를 퍼드덕대봐야 깃털과 미세먼지만 풀풀 날릴 뿐이다. 국민은 그저 몸통이 잘 날면 그뿐이다. 깃털이야 자기가 그 바람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올라탈 지가 중요하겠지만.
맞는 말인데, 뭐랄까, 아이러니한 현실의 느낌을 살리는, 감칠 맛 같은 게 부족해 뵌다. MSG 한번 착착 뿌려주자. ‘새는 온 몸으로 난다’를, ‘우회전하려는 새는 왼쪽 날개를 들고, 좌회전하려는 새는 오른쪽 날개를 든다’고 바꿔보면 어떨까.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니, 이라크파병 같은 이슈로 좌파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고. 지금 좌회전이 선명해 보인다는 건, 지금 우파더러 너희가 무슨 보수냐는 힐난이 쏟아진다는 건, 혹시 그 때 오른쪽 날개를 들었던 데 따른 반사효과도 작용한 게 아닐까.
우파도 왼쪽 날개를 들면 욕 먹을 지 모른다. 그 동네에도 장렬하고도 멋지게 분노하는 골목대장들은 많으니 저마다 “우측 깜빡이 켜고 좌회전했다”고 돌 던질 게다. 하지만 이 대목만큼은 우파 사정이 훨씬 낫다. 우파의 장점은, 좋게 말해 교조적이지 않은 태도이고, 나쁘게 말해 대세추종적 자세 아니던가.
돌이켜보면 이런 기억도 있다. 이명박 정권 때 박근혜 의원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란 걸 내놓자, 흠칫 놀란 좌파 쪽에선 이러다 복지 이슈를 우파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어느 보수 언론은 복지가 원래 우파의 의제라는, 보기 드문 기획도 했다. 그 때야 그게 유리한 얘기니까, 선거 뒤 ‘장밋빛 선거공약은 안 지키는 게 책임정치’라는 요상한 논리로 엎어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믿거나 말거나 홍준표 전 대표도 한때 토지공개념을 옹호하면서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꽤나 놀라운 단어를 말하고 다닌 적도 있다. 그 이전에 남북 유엔동시가입으로 한반도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헌법적 작태를 저지른 건 노태우 정부였다. 퍼드덕 오른쪽 날개 놀음에 이런 기억은 다 날아갔나 보다.
보수 궤멸이라 비웃지 말라. 소선거구제, 지역구도 등으로 기본 100석 정도는 먹고 들어가는 거대 정당에겐 “우회전을 원하면 왼쪽 날개를 들라”고 명확하게 요구해야 한다. 물론, 응답할 자신 없다면 보수 궤멸이라고 징징대지도 말아야 한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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