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 팬카페 가입하려면
인증 시험 ‘아파트’ 통과해야
뮤비 재생해 사진파일 첨부도
※연예계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B급 장면’을 소개합니다. 특종보다 재미있는, 연예계 이면의 진실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빅히트)는 최근 예상치 못한 숙제(?)가 생겼습니다. 방탄소년단의 팬 인터뷰 주선 요청이 쏟아져서입니다. “요즘엔 방시혁 PD님과 방탄소년단 인터뷰 대신 오히려 팬을 연결해 달라고들 많이 하시더라고요.” 빅히트 관계자가 난감해하며 털어놓은 속내입니다. 방탄소년단이 워낙 화제가 되다 보니 이들의 팬까지 주목받고 있는 겁니다.
팬클럽 회장? 팬덤의 화석
빅히트가 난처한 건 연예기획사가 나서 소속 가수의 팬을 언론사에 연결해 주는 게 소위 ‘모양이 빠져서’가 아닙니다.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요즘엔 아이돌 팬은 있지만, 팬클럽 회장은 찾기 어렵습니다. 팬클럽 회장은 2000년대 이전이나 볼 수 있는 팬덤의 화석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H.O.T의 팬클럽은 소위 회장을 중심으로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했지만, 요즘 아이돌그룹 팬덤은 다릅니다. 특정 한 사람을 팬클럽 회장으로 뽑지도 않을뿐더러 그 한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지도 않습니다. 각개전투식으로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행위)’을 하죠. 팬덤의 이름을 지어 연대감을 확인하는 게 전부입니다. ‘따로 똑같이’ 문화인 셈입니다. 요즘엔 아이돌 팬클럽을 기획사가 관리하는 곳도 많습니다. 특정 팬에 권력이 집중돼 생길 수 있는 부정적 소동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방탄소년단 팬클럽에도 회장은 없습니다. 다만 팬덤의 이름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언급해 화제가 된 ‘아미(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ㆍA.R.M.Y)입니다.
아미는 여러모로 특이합니다. 밖으로 드러난 팬클럽 회장은 없는데 추진력은 막강합니다. 방탄소년단 외국 팬을 일컫는 ‘외랑둥이’는 방탄소년단 미국 활약의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영어가 아닌 외국어 노래 방송을 꺼렸던 보수적인 미국 라디오 방송사를 흔들어 한국어로 된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전파를 타고 현지 전역에 퍼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라디오 방송사에 사연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방탄소년단을 몰랐던 DJ를 설득한 결과였습니다. 외국 팬들이 한국 팬처럼 뜨거운 팬덤을 보이기는 이례적입니다.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어 방탄소년단 팬들의 열정이 그만큼 뜨겁다는 뜻입니다.
방탄소년단을 독해하라… 노래 퀴즈 뛰어 넘는 퀴즈
안팎에서 주목받고 있는 아미는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요. 호기심에서 출발해 아미 되기에 도전해봤습니다. 실제로 아미가 되기 위해선 열정이 필요했습니다. 방탄소년단 팬클럽(유료 가입)이 아닌 팬카페에 가입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빅히트는 방탄소년단 공식 팬카페(http://cafe.daum.net/BANGTAN)를 운영하는데 가입 절차가 까다로웠습니다. 넘어야 할 관문도 세 개가 넘었습니다. 1차부터 난관이더군요. 대기업 입사 시험을 방불케 하듯 어려웠습니다.
방탄소년단 팬카페 가입 시험(Army Fancafe Admission TestㆍAFAT) 문제는 이랬습니다. ‘RUN BTS! 2018-EP 51 V앱(네이버 인터넷 생중계) 영상 중 후룸라이드 미션에서 5점을 받은 팀 멤버의 활동 명을 나이 순으로 작성’ ‘방탄소년단 ‘호르몬 전쟁’ 춤 연습 영상 중, 반바지를 입은 멤버의 생년월일’을 적는 식이었습니다.
문제를 읽는 것만으로도 난독증에 걸릴 것 같았습니다. 단순히 방탄소년단의 노래만 알고 있어선 손도 대지 못할 질문이었죠. 결국 인터넷 창을 하나 새로 띄웠습니다. V앱 홈페이지로 가 방탄소년단 채널을 선택한 뒤 해당 에피소드 영상을 찾았습니다. 결국 영상을 보고 풀 수밖에 없는 문제였으니까요.
두 번째 문제를 풀기 위해 유튜브로 넘어갔습니다. ‘방탄소년단 ‘호르몬 전쟁’ 춤 연습 영상’으로 검색하니 여러 영상이 뜨더군요. 검색 후 가장 위에 올라온 영상(‘리얼 워 버전’)을 클릭했더니 낭패를 봤습니다. 문제처럼 반바지를 입고 춤을 추는 멤버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튜브에 올라온 두 번째 영상(‘방탄소년단 ‘호르몬 전쟁’ DANCE PRACTICE’)을 클릭하니 반바지를 입은 멤버가 딱 한 명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제이홉이었습니다. 포털사이트로 넘어가 그의 이름을 치니 바로 생년월일이 떴습니다. 두 번째 문제의 답은 ‘94/02/18’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간신히 콘텐츠 관련 세 문제를 푸니 진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불혹을 넘긴 기자에겐 상당한 ‘노오력’이 필요한 과제였으니까요. 단순히 앞서 가입한 아미들의 답을 커닝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카페의 회원 가입 문제는 주마다 바뀝니다. 전 이달 둘째 주에 ‘아파트(AFAT)’를 치렀습니다.
음원 재생->뮤직비디오 재생 인증까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방탄소년단 노래 스트리밍(온라인 재생)과 뮤직비디오 재생 인증 과제가 남아있더군요. 앞서 콘텐츠 문제가 필기시험이었다면, 인증 문제는 현장 평가인 셈이었습니다. 조건은 까다로웠습니다. 반드시 가입 신청을 하는 날짜에 신곡 ‘페이크 러브’를 멜론 등 유료 음원 사이트에서 들은 뒤 그 날짜가 나오도록 재생 화면을 캡처해 사진 파일로 첨부해 올려야 했습니다. ‘페이크 러브’의 총 길이는 4분 2초. 이 중 3분 50초 이상 노래를 재생한 뒤 캡처 사진을 올린 것만 인정했습니다. 전 휴대폰 기종이 갤럭시6였는데 화면에 시간은 나오는데 달과 일이 표시 되지 않더군요. 결국 컴퓨터로 한 음원사이트에 들어가 ‘페이크러브’를 재생한 뒤 컴퓨터 바탕화면 작업줄에 표시된 재생 일이 모두 담기도록 캡처해야 했습니다. ‘좋아요’를 누른 뒤 이 캡처 화면에 아이디를 써넣지 않으면 탈락의 빌미가 되더군요. 뮤직비디오 인증 역시 비슷했고, 이 과정을 거쳐 재생 화면을 유튜브에서 캡처했습니다. 퀴즈 답과 곡 재생 등 인증 사진 요구 조건에 빠진 것이 없나 검토를 한 뒤 ‘등업신청_정회원’ 게시판에 문제의 답과 인증 사진을 올렸습니다. 가수의 데뷔곡 등을 묻고 답하면 가입이 되는 여느 스타들 팬카페와 확연히 달랐습니다. 진짜 방탄소년단에 관심이 있는 이들만 모아 그들의 소식과 콘텐츠를 공유하겠다는 겁니다. 이제 팬카페 가입도 열정을 인증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방탄소년단이 보여준, 새로운 팬덤의 풍경입니다.
13일 만의 합격 통보.. 아미 돼보니
‘아파트’를 치른 뒤 팬카페를 둘러보니 등업 결과는 신청일 30일 이후에 발표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신청한 주에만 수천 명의 팬이 ‘아파트’를 치렀습니다. 응시자들의 답을 검토하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파트’를 통과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카페에 들렀더니 22일 정회원으로 승급돼 있더군요. 지난 9일 ‘아파트’를 치른 뒤 13일 만의 합격 통보였습니다. 큰 기대 없었는데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정회원이 되면 방탄소년단 일곱 청년이 수시로 올리는 글을 읽을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집니다. 이 기사를 쓰면서 팬카페를 들어갔더니 멤버인 뷔가 팬들에게 웹툰 하나를 추천하는 글을 올렸더군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를 본 같은 부서 선배는 ‘아파트’ 통과 축하 인사를 전했습니다. 방탄소년단 얘기만 나오면 시어머니가 돼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 잡으려 득달같이 달려 들었는데, 오늘은 세상을 다 포용할 듯 신사임당 같은 자상한 표정이었습니다. 이상 음악 담당 기자의 ‘아파트’ 체험기였습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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