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에 가격 부담으로 전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을 상대로 개시한 무역 전쟁이 미국 제조업체의 ‘미국 탈출’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자, 벌써부터 그 부작용이 현실화했다는 지적이 국내ㆍ외에서 나오고 있다. 자국 산업 보호나 일자리 창출 등 단기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언정, 이미 ‘국경’ 개념이 흐릿해진 글로벌 무역질서 속에서의 강경한 보호무역주의는 다른 산업이나 일반 소비자들의 가격 부담으로 전이돼 장기적으로는 커다란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협력실 차장은 26일 할리 데이비슨의 ‘미국 내 생산설비 해외 이전’ 발표와 관련해 “애초 목적인 미국 산업 보호, 국내 투자 확대 등이 아니라 그 반대로 미국에서 달아나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호무역이라는 건 일단 시작되면 보복으로 확산되는 게 불가피하다”며 “보복은 서로 ‘아픈 곳’을 찌르는 것이라 품목도 다를 수밖에 없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 철강업계의 이익을 보호하려던 게 다른 업계로 불똥이 튀어 버렸다는 지적이다. 그는 “보호무역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다 보면 그 부작용은 앞으로 더욱 다양하게 불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촉발한 관세전쟁이 장기적으로 세계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조 위원은 “자국우선주의는 세계 무역을 크게 위축시키는 형태로 작동할 수 있다”면서 “세계 전체가 보호무역의 구렁텅이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개별 국가의 경우 무역 분쟁으로 수출 자체가 힘들어지면 관련 산업도 타격을 입게 되고, 일자리도 감소하는 등 역효과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 위원은 “20세기 초 대공황 시절에도 대규모 무역 분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미국 내부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채드 바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ㆍ알루미늄 고율 관세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자기파괴적”이라고 비판했다. 할리 데이비슨이 EU의 보복 관세를 피해 ‘미국산 오토바이’의 생산을 줄이기로 한 만큼 미국 스스로에 악영향을 끼친 정책이었음을 비꼰 것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관세를 부과할 때마다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폴 라이언(위스콘신ㆍ공화당)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나쁜 아이디어”라고 비판한 뒤, “미국의 노동자와 소비자, 제조업자를 돕는 최선의 방법은 새로운 시장 개척이지, 우리 시장의 장벽을 높이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남우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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