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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발 무역전쟁에 글로벌 생산거점 ‘이합집산’ 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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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발 무역전쟁에 글로벌 생산거점 ‘이합집산’ 요동

입력
2018.06.26 18:55
수정
2018.06.26 22:29
2면
0 0

할리데이비슨, EU 보복관세 피해

미국 내 공장 해외 이전 발표

트럼프 “세금은 변명일 뿐” 맹비난

트럼프 집권 후 글로벌 기업들은

대체로 美로 이전 많아

EUㆍ中 등 美에 초고율 관세 땐

‘미국 엑소더스’ 이어질 가능성도

2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근교의 소도시인 리비어에 있는 한 할리 데이비슨 매장에서 직원이 전시된 오토바이들을 점검하고 있다. 리비어=EPA 연합뉴스
2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근교의 소도시인 리비어에 있는 한 할리 데이비슨 매장에서 직원이 전시된 오토바이들을 점검하고 있다. 리비어=EPA 연합뉴스

미국의 고급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할리 데이비슨이 자국 내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25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한 유럽연합(EU)의 보복관세 맞대응에 따른 직격탄을 피하기 위해서인데, ‘트럼프발(發) 무역전쟁’ 개시 이후 글로벌 대기업이 미국 내 공장을 국외로 옮기겠다고 공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EU와 중국 등에 투하한 관세폭탄이 오히려 부메랑이 된 셈이다. 특히 그 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탓에 생산설비의 해외 이전 계획을 철회하거나 보류했던 다른 기업들도 관세전쟁 때문에 내부적으로 ‘미국 엑소더스’ 계획을 준비 중이다. 전세계에 생산기지를 구축해 놓은 다국적기업의 관세 따라 공장 옮기기 행렬이 잇따를 전망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할리 데이비슨은 이날 공시자료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이 회사의 마이클 플루고프트 대변인은 “EU의 관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해외 생산 확대를 우리가 선호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이것만이 우리가 유럽 고객들에게 오토바이를 계속 제공하도록 하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의 목적은 ‘EU 보복관세 회피’이며, 따라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트럼프 행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기업들 중 할리 데이비슨이 가장 먼저 백기 투항해 놀랐다"면서 격렬히 비난했다. 그는 “나는 그들을 지키려고 분투했고, 그들은 결국 EU로 수출하는 데 관세를 물지 않게 될 것”이라며 "세금(관세)는 그저 할리의 변명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에도 트위터에다 “만약 그들이 (생산시설을) 옮긴다면,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전에 없던 세금이 부과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할리 데이비슨이 뻔히 예상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러한 선택을 한 까닭은 EU가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유럽지역 판매량(약 4만대)은 전 세계 판매량의 6분의1에 해당한다. 하지만 미국산 제품에 대한 EU의 보복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종전 6%의 관세는 31% 수준으로 급격히 높아지고, 이에 따라 EU 수출 물량의 경우 대당 2,200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연간 기준으로는 올해 3,000만~4,500만달러가, 내년에는 9,000만~1억달러 정도가 되는 셈이다.

물론 지금도 할리 데이비슨이 미국에만 공장을 두고 있는 건 아니다. 인도와 브라질, 호주, 태국 등에서도 생산 라인이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해외공장 건설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미국 내 생산설비를 해외로 이전하겠다는 이번 계획은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 상실’이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 WSJ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한 상대국의 대응이 해외에서 사업하는 기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NYT는 “미국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점점 더 의존하는 현실에서 백악관의 접근법이 역효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 줬다”고 꼬집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할리 데이비슨의 백기 투항은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으로 주요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생산체계가 요동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많은 다국적 제조기업이 미국과 중국, EU 등의 대립 구도에 맞춰 생산설비를 이합집산시키고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1년 동안에는 글로벌 대기업의 미국으로의 공장 이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었던 2016년 11월 말 미국 에어컨 제조업체 캐리어는 인디애나 공장의 멕시코 이전 계획을 철회했다. 지난해 6월에는 자동차 업체인 포드도 미시간주 소형차 생산공장을 멕시코로 옮기려다 이를 백지화했다. 오히려 7억달러를 투자해 미시간주에 자율주행차ㆍ전기자동차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일본 도요타, 한국의 삼성ㆍLGㆍ현대차도 비슷한 시기에 앞다퉈 대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의 경우 올해 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세탁기 공장을 완공, 가동에 들어갔다. 미국우선주의에 입각한 트럼프 대통령의 “해외에 공장을 지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엄포에 백기를 든 것이다.

하지만 중국, EU가 트럼프 행정부에 보복 조치를 내놓으면서 최근에는 전혀 다른 방향의 흐름도 감지되고 있다. 미국에서 만들 경우 EU나 중국 등에서 초고율 관세를 맞게 되는 일부 글로벌 대기업들이 해당 물량만큼의 ‘탈 미국’ 행보를 모색하고 있다. 독일 다임러AG는 중국 정부가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된 벤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보복 관세를 매길 경우 수익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에서 완성품을 만들고 있는 세계적 디젤엔진업체 커민스도 중국산 부품의 ‘추가 관세’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관세 폭탄을 피하려는 이들 업체가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 아예 생산라인을 해외로 이전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채드 바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앞으로 더 많은 회사들이 할리 데이비슨의 선례를 따르게 될 것”이라며 관세전쟁을 피하기 위한 다국적 기업들의 국경을 넘어선 생산설비 이동작업이 향후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남우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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