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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활동지원사 휴게시간
내달부터 4시간마다 30분 적용
지난 21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아파트. 9.9㎡ 남짓한 방에 배현우(35), 민우(33) 형제가 인공호흡기를 단 채 나란히 누워 있었다. 이들 형제는 온몸의 근육이 점차 약해지다가 급기야 호흡기까지 제 기능을 못하게 되는 희귀난치 유전병 ‘근이영양증’ 환자. 10대 초반부터 몸을 움직이지 못해 병상에 누워 지내고 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형 현우씨는 지역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부소장으로 일하면서 장애인 권익단체에서 상임대표로도 활동한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팬인 동생 민우씨는 작년과 올해 세 차례나 콘서트에 다녀왔다.
그런데 이들 형제는 요즘 생존을 걱정하며 노심초사한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7월1일부터 장애인 활동지원사(활동보조인)들이 매 4시간마다 30분씩(8시간 근무시 1시간) 휴게시간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활동지원사가 자리를 비웠을 때 인공호흡기 호스가 자체 압력 탓에 빠지거나 기계 장치가 고장이 나면 우리는 죽는 수밖에 없어요. 형제 중 한 명이 그런 사고를 당하면 나머지 한 명은 무력하게 이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거고요.”(현우씨) 곁에 있던 박영복(27) 활동지원사도 “오늘만 해도 누전으로 거실 콘센트가 까맣게 그을렸는데 내가 자리를 비웠다면 화재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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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없이 못 움직이는 장애인
“사고 땐 무기력하게 죽을 것”
생명ㆍ안전 위협으로 느끼지만
정부는 뾰족한 해법 못 내놔
지난 2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제한을 받지 않았던 특례업종이 26종에서 5종으로 줄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속한 사회복지서비스업도 이렇게 제외된 21종 중 하나다. 특례업종 제도가 종사자들의 장시간-저임금 근로를 강요하는 굴레로 작용할 때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도 개선 방향 자체는 바람직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활동지원사처럼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이용자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특수 업무의 경우 이대로 방치하는 것이 답일 수는 없다. 지체장애 1급 서보민(27)씨는 “휴게시간 의무 적용이 되기 전에도 인공호흡기 분리로 중증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고가 매년 발생한다”면서 “중증장애인들은 ‘활동지원사 휴게시간이 시행되면 나는 죽는다’는 절박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고위험 중증장애인 800여명에 한해 전담 활동지원사의 휴게시간 동안 가족이 활동지원을 하면 가족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전담자 휴게시간에 잠깐 와서 일을 해주는 대체 활동지원사에게는 기본 수당보다 한 시간에 1만원씩 더 주겠다는 나름의 대책을 내놨다. 그럼에도 “탁상행정식 대책만 내놨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복지부는 “올 연말까지는 휴게시간을 주지 않아도 처벌하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선 상황. 하지만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등 다른 부처와 논의가 필요하다며 6개월 이후 대책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어 뾰족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에 함께 휴게시간 의무적용 대상에 포함된 어린이집 보육교사에 대해 복지부는 휴게시간에 아이를 돌볼 보조교사 6,000명 고용을 지원하기로 하며 우려를 일부나마 불식시켰지만 장애인 활동지원과 관련해선 관심이 덜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증장애인의 생존권 보장과 활동지원사의 처우 개선 대책을 포괄한 종합계획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정혜지 인턴기자(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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