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수비 손 맞았을 땐 묵묵
오프사이드 판정 번복 골 인정
“유럽·스타 위한 기술인가” 분노
월드컵에서 보다 정확한 판정을 내리기 위해 처음 도입한 비디오판독(VAR)이 공정성 시비에 또 휘말렸다. 대회를 치를수록 월드컵 흥행을 위해 유럽의 강팀 또는 특급 스타에게 유리한 판정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축구 팬 사이에선 ‘VAR는 합법적 승부 조작 시스템’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26일(한국시간) 열린 B조의 조별리그 최종전은 사실상 VAR이 경기를 지배했다. 이번 대회에서 유럽의 강호를 맞아 선전한 모로코는 잘 싸우고도 VAR의 덫에 걸려 1무2패로 마감해야 했다. 이미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모로코는 이날 스페인과 최종전에서 후반 막판까지 2-1로 앞서며 스페인을 벼랑 끝으로 밀었지만 후반 추가 시간 허무하게 동점골을 내줬다.
종료 직전 스페인의 다니 카르바힐이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를 중앙으로 파고들던 이아고 아스파스가 오른발 뒤꿈치로 공의 방향을 바꿔 모로코 골망을 흔들었다. 그러나 선심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어 득점은 인정되지 않는 듯 했지만 주심이 VAR를 가동하며 판정을 번복했다. 스페인은 기사회생했고, 다잡은 ‘대어’를 놓친 모로코는 땅을 쳤다.
모로코로서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컸다. 전반과 후반 한 차례씩 공격 상황에서 공이 페널티박스 안에 있던 상대 수비수 제라르 피케의 손에 맞았는데, 주심은 단 한번도 VAR를 가동하지 않았다. 모로코 선수들의 강력한 항의에도 주심은 끄떡하지 않았다.
모로코는 앞선 포르투갈과 2차전에서도 상대 수비수 페페의 명백한 핸드볼 파울이 나왔을 때도 VAR 판독 없이 그냥 넘어가 1-1 무승부로 마쳤다. 당시 경기 후 모로코 언론과 팬들은 분노했다. 모로코월드뉴스는 “FIFA가 모로코의 희망을 없앴다”며 비판했고, 팬들은 “VAR은 유럽을 위한 기술”이라고 불평을 쏟아냈다. 스페인전을 마친 뒤 모로코 공격수 노르딘 암라바트는 중계카메라를 향해 VAR 신호를 두 손으로 그리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동시에 열린 포르트갈과 이란의 최종전도 VAR이 무려 3차례나 가동된 가운데 두 팀이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실낱 같은 16강 희망을 품었던 이란은 0-1로 뒤진 후반 35분 포르투갈의 슈퍼스타 호날두의 고의적인 팔꿈치 사용을 두고 일어난 VAR 판독 결과가 못 마땅했다. 호날두는 상대 수비수와 몸싸움 과정에서 모르테자 푸르알리간지를 팔꿈치로 쳤다. 이란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은 이 판정에 대해 “규정엔 팔꿈치를 쓰면 레드카드를 주게 돼 있지만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나 호날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노골적으로 항의했다.
VAR를 향한 외신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영국 BBC는 “VAR이 모든 것을 바꿨다”고 했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VAR 논쟁 끝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살아남았다”고 전했다. 미국 CBS스포츠는 “스페인은 VAR에 고마워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첼시의 레전드 출신 디디에 드록바는 “VAR은 앞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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