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8개월째 노숙농성
1984년부터 3년간 강제노역ㆍ폭행
2007년 정신병원서 부친ㆍ누나 찾아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 봐 주길”
“전화 받고 혼란스러웠죠.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부터 ‘진상규명은 안됐는데 상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까지 들었죠.”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간이 텐트에서 만난 한종선(43)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대표는 담담하게 말했다. 한씨는 형제복지원 실태를 알린 공로로 최근 제8회 진실의힘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가폭력 생존자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 제정된 진실의힘 인권상은 1971년 재일교포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19년 복역한 서승 교수, 고 김근태 전 의원, 최장기 양심수 우윈틴 선생과 우윈틴 재단, 유서대필 사건 희생자 강기훈씨 등이 수상한 바 있다.
한 대표는 “저도 처음에는 말하기 어려웠다. 5년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피해 당사자 중 하나가 길을 뚫으면 다른 피해자도 ‘나도’하면서 말을 시작하죠. 한데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증언하고 나서부터 혼돈이 와요. 다른 피해생존자들은 처음에 제가 ‘툭 튀어 나왔다’고 생각했고, 말을 하고 나서 힘들어했죠. 그러면서 버틴 거예요. (피해자생존자모임 결성 후 5년 간) 혼돈의 시간이 계속됐죠.”
1976년~1987년까지 약 3,500여명을 강제 수용한 최대 부랑인 수용 시설 형제복지원은 원생 35명이 탈출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감금과 강제노역, 구타와 성추행 등 인권유린으로 사망자가 최소 500여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씨가 형제복지원에 감금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84년. 3년 후 복지원이 폐쇄될 때까지 강제노역과 폭행을 당한 그는 2007년 무렵 함께 감금됐던 아버지와 누나를 정신병원에서 찾았다. ‘5년간 마음의 준비’를 끝낸 2012년 5월 한 씨가 국회 앞 1인 시위를 시작하며 이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내무부 훈령으로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부랑인 수용시설 36곳에 약 1만6,125명이 수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8개월째 국회 앞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한 대표는 “제가 형제복지원 문제를 알리려고 했던 이유는 증거를 드러낼 수 있는 게 형제복지원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무부 410호 훈령으로 만든 수용소가 36개잖아요. 그렇다면 그 중 하나인 형제복지원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나머지 수용소 실태도 수사할 수 있을 거다, 뒤에서 말 못하고 참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라고 특별법을 추진한 거거든요.” 2013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이 꾸려지고 파악된 관련 피해자는 270여명이다. 한 대표는 “공권력에 유린된 피해자들이라 공권력에 큰 기대가 없지만, 특별법이 통과되고 국가가 사과하면 피해자가 어마어마하게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19대 국회인 2014년 사건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 대책을 담은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내무부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등 피해 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20대 국회가 시작되며 특별법은 19대(54인)보다 늘어난 국회의원 73인이 참여해 공동발의됐지만, 더 이상의 진척은 없다. 한 대표는 “제가 이 활동을 하는 이유는 불편해서가 아니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상식 끝나고 28일에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이랑 회의가 있어요.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추진위원회 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니까 우리 요구사항을 전달하러 가야죠. 국회 상임위가 꾸려지면 여야 의원 면담하고 밀어 부쳐야죠.”
진실의 힘 인권상 시상식은 유엔이 정한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인 26일 서울 남산 문학의집에서 열렸다. 11쪽에 걸친 수상소감에서 그는 말했다. “우리를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 봐주셔야 우리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증언한 것을 제 3자인 여러분들이 받아서 꼭 기록하고 전달해주세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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