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 파업한다고 병원이 환자를 내보내는 게 너무나 원통합니다. 수술 받고 채 회복도 못한 노모를 언제까지 응급실에 모셔야 합니까?” 25일 오후 수원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김인규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6시간 째 응급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주치의도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2016년 11월 호르몬 이상과 두통 치료를 위해 충남의 N노인전문병원에 입원했다가 넘어져 왼쪽 고관절이 부러졌다. 어머니는 B병원 중환자실로 옮겨 고관절 수술을 4번이나 받았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인공 고관절을 고정한 뼈가 손상됐고 주변 살이 녹을 정도로 염증이 심각해졌다.
김씨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달 1일 한림대성심병원에 어머니를 모셨다. 2일 응급수술로 손상된 인공고관절을 빼내고 염증 제거 수술도 받았다. 김씨의 어머니는 2주 전 치료제를 바꾸고 코로 영양분을 공급받으면서 점차 기력을 찾게 됐다.
그런데 그 무렵 의료진은 김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지난주 목요일(21일) 퇴근을 하고 어머니께 갔더니 담당 의사가 불러요. ‘간호사들이 26일부터 파업을 해서 병원에 계실 수 없으니 빨리 다른 병원으로 옮기셔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되겠냐고 했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담당 의사는 “수원에 있는 대학병원에 가시도록 다 협조해놨으니 옮기시면 된다”고 했지만 25일 해당 병원에 오니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김씨는 “처음 온 환자처럼 이런 저런 검사만 하고, 병실 공동 간병인도 없어 간병인을 개인적으로 구해야 한다”면서 “한림대성심병원 파업으로 환자 대부분이 갑자기 병원을 옮기게 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한림대성심병원의 병상 가동률은 평소 85%에서 25일 39.8%로 반 토막도 안 되게 떨어졌다. 회복기에 있는 환자 외에 중환자들도 의료진의 권유에 병원을 옮겼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볼 때 병원 노동조합이 파업을 한다고 해서 병실을 이 정도로 비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성심병원 관계자는 “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 중 몇 명이 파업에 참여할지 파악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다. 그래서 병동을 운영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면서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의 입장은 병원과 확연하게 다르다. 한미정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은 “파업을 앞두고 노조는 병원 측에 환자 안전대책을 수립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통상적으로 보낸다. 하지만 입원 환자 대부분을 내보내는 사례는 없었고, 병동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인력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면서 “병원 측이 ‘노조 파업 때문에 환자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병동을 비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병원과 노조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환자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 김씨는 “병원 측이 노조를 탄압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면서 “대학병원에서조차 환자의 안전과 인권이 이렇게 무너지면 이제 어디를 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 한림대의료원지부는 지난 18~20일 조합원을 대상으로 파업찬반 투표를 실시해 조합원 2,524명 중 2,477명(98.1%)이 찬성했다. 노조는 “지난해 선정적인 춤 강요와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사회적 질타를 받았던 한림대의료원의 모습은 본질적으로 바뀐 게 없다”며 “한림대의료원이 전체 직원의 절실한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26일 파업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파업 대상은 한림대의료원 산하 강남, 동탄, 춘천, 한강, 한림성심병원 등 5개 병원이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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