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압승 이끈 북핵, 실력의 승리
서민들 먹고사는 문제서도 능력 보여야
문 대통령, 민생 현장 더 자주 찾기를
6ㆍ13 지방선거 압승 이후 처음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상당 시간을 ‘군기 잡기’에 할애했다. “기대가 높은 만큼 실망의 골도 깊어질 수 있다”고 경계했고, “새로 선출된 지방권력과 정부, 청와대를 감찰하라”고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민심의 천변만화(千變萬化)를 누구보다 뼈아프게 바라봤던 이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12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포함된 것까지 따지면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 이어 세 개의 큰 선거에서 연거푸 이긴 셈이다. 정치 입문이래 선거 패배에 익숙해 있던 그로서는 잇단 승리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을 느낄 법도 하다. 큰 선거에서 이긴 뒤 오만과 내부 권력투쟁으로 곤두박질친 정권이 어디 한둘인가.
멀리 갈 것도 없다. 당 대표 때부터 거의 모든 선거를 싹쓸이해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생생한 예다. 당시 청와대와 여당은 연이은 선거 승리에 도취해 독선과 불통의 국정 운영에 민주주의와 헌법 유린도 서슴지 않았다. 그 여파는 탄핵 사태와 지금의 자유한국당 몰락으로 이어졌다. 선거 승리는 정치적 동력을 높이는 활력소가 되기도 하지만 자만에 빠지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남겼다.
혹자는 달라진 시민 정치의식과 야당의 재기불능적 궤멸을 들어 여당의 독주체제 장기화를 예상하고 있다. 2년 뒤의 총선에 이어 2022년 대선도 따놓은 당상이라고 넘겨짚는다. 물론 탄핵과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시민의식이 약간 진보 쪽으로 이동한 것은 여론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참회는커녕 친박ㆍ비박 세력다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야당 재건도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보수진영은 여전히 20~30%의 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보수 유권자들이 무능한 자유한국당을 심판한 것이지, 정체성마저 바꾼 것은 아니다. 보수정당이 조금만 탈바꿈하면 지지를 보낼 유권자가 적지 않다. 사실 지방선거에서의 여당 압승은 40%에 달하는 중도층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이념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중도층은 언제든 지지정당을 교체할 준비가 돼 있다. 조선일보가 지방선거 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중도층의 69%가 “총선에서 지지정당을 바꿀 수 있다”고 한 응답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총선과 대선에서의 보수ㆍ진보 간 승부는 실력에 달려 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누가 뛰어나느냐에 지지 여부가 판가름 난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것처럼 북핵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완벽한 실력의 승리다. 한반도 평화라는 목표를 정해 놓고 북한과 미국에 대한 지속적인 대화 노력이 거둔 결실이었다. ‘위장 평화쇼’라는 비난 말고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보수야당은 애초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북핵 문제 해결은 미완의 상태다. 사찰과 검증, 해체에 이르기까지 숱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그 고비마다 지지는 출렁이기 마련이다. 진정한 중재자로서의 실력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집중할 분야는 북핵과 경제 두 가지다. 북핵 문제가 일단 궤도에 오른 상황이라고 한다면 이젠 경제가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경제는 좀처럼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책 방향의 옳고 그름은 둘째 치고라도 경제를 헤쳐 나갈 실력이 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실업 증가와 소득 격차 확대는 서민의 삶 보호를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로서는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경제 살리기에 올인 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경제관련 회의를 주재하는 것도 좋지만 민생현장에 대통령이 자주 나타나야 한다. 재계 총수들도 만나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도 듣고, 생산현장도 찾아가야 한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에게 믿음과 기대를 심어 준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에게 지시한 3가지 자질 가운데 ‘유능함’이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경제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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