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마을에 베이스캠프
통제 용이 ‘기숙학교’로 불려
훈련장엔 3m 높이 가림막 설치
예상밖 벼랑 끝에 몰린 독일
‘한국전에 올인’ 결전 준비 중
모스크바 근교 바투틴키라는 마을에 있는 독일 축구대표팀의 러시아월드컵 베이스캠프는 ‘기숙학교(Boarding School)’라 불린다. 외신들은 “휴양 도시 소치(독일이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차지했을 때 베이스캠프)의 고급 호텔에 머물던 독일이 지금은 옛 소련 국경수비대가 있던 마을에 버려졌다”고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주변이 조용해 축구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다. 또 준결승과 결승이 열리는 루즈니키 스타디움과 가까워 2연패를 노리는 독일대표팀에 제격의 장소다. 독일축구협회는 바투틴키 호텔 스파 콤플렉스 안에 72개의 숙소를 비롯해 스파와 헬스장, 재활 공간, 회의실을 비롯해 수영장과 이발소까지 새로 지었다.
24일(현지시간) 오후 찾아가 본 독일팀 베이스캠프는 러시아 경찰들에 의해 물 샐 틈 없이 통제되고 있었다. 정문을 지키는 관계자는 “독일 총리가 와도 허락 없이는 열어줄 수 없다”고 했다. 독일은 베이스캠프에서 약 3㎞ 떨어진 러시아 프로축구 명문 CSKA 모스크바의 트레이닝 센터를 훈련장으로 쓰는데 이곳도 3m 높이의 푸른 담장으로 둘러싸여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잠시 후 경찰차 호위를 받으며 독일대표팀 선수단 버스가 훈련장에 도착했다. 버스 옆면에 ‘ZUSAMMEN. GESCHICHTE SCHREIBEN(다 함께 역사를 만들자)’이라는 슬로건이 선명했다. 한국이 월드컵 2연패에 도전하는 독일과 격돌한다. 두 팀은 27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카잔 스타디움에서 러시아월드컵 F조 3차전을 치른다.
멕시코(0-1)에 덜미를 잡히고 스웨덴(2-1)에 극적인 역전골로 기사회생하는 등 ‘디펜딩 챔피언’의 자존심을 구긴 독일은 한국전을 더욱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요하임 뢰브(58) 독일 감독도 보안에 적지 않게 신경 쓰는 눈치다. 뢰브 감독은 스웨덴전 직후 “많은 선수가 피로감을 느껴 내일 하루는 우리 선수 상태를 확인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라며 휴식을 시사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24일 독일대표팀 일정을 ‘휴식일(Rest day)’이라고 공지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스웨덴전에 뛰지 않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훈련이 진행됐다. 독일은 중앙수비수 제롬 보아텡(30ㆍ바이에른 뮌헨)이 스웨덴전에서 퇴장당하고 세바스티안 루디(28ㆍ바이에른 뮌헨)는 코뼈를 다치는 바람에 3~4명 변화를 줘야 한다. 24일 훈련을 소화한 선수 중 일부가 한국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비공개로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무명 선수 출신으로 밑바닥부터 올라와 독일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뢰브 감독은 ‘자수성가형 명장’이라 불린다.
그는 국가대표 한 번 못하고 1부와 2부를 오가는 그저 그런 선수 시절을 보냈다. 현역 때는 1981년부터 2년 간 차범근(65) 전 국가대표 감독과 독일 프로축구 아인트라흐트 프랑프푸르트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예전에 방송 중계 중 캐스터가 뢰브 감독에 대해 묻자 차 전 감독이 “뢰브는 저의 백업 멤버였다”고 말해 화제를 모은 적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뢰브 감독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차 전 감독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나는 그 때 팀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고 뢰브 감독은 유망주라 벤치에 있었던 것”이라며 “단순히 차범근의 백업 멤버라고 하면 뢰브 감독에게 큰 실례”라고 설명했다. 차 전 감독의 아들인 차두리(38)가 이번에 한국대표팀 코치로 뢰브 감독을 상대한다.
1995년 서른다섯의 나이에 은퇴한 뒤 지도자로 여러 클럽을 전전하던 뢰브 감독은 2004년 독일 국가대표 코치로 자신보다 4살 어린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보좌했다. 자국에서 열린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한 뒤 클리스만 감독이 물러나자 대표팀 사령탑을 이어 받아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독일에 24년 만에 우승을 안겨 ‘명장’ 반열에 올랐다. ‘유럽 축구 명장의 전술’이라는 책을 쓴 일본 축구 전문 작가 시미즈 히데토는 12년 째 ‘전차군단’을 이끄는 뢰브 감독에 대해 “한 번의 규칙 위반은 용서하지만 두 번의 용서는 없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만큼 규율을 중시한다. 심리학이든 데이터든 분석할 수 있는 자원은 모두 가동하는 독일사람 특유의 철저함과 꼼꼼함도 지녔다.
한국은 독일이 초반 2연승을 거둬 우리와 할 때 조금 여유 있게 경기할 거란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벼랑 끝에 몰린 독일은 지금 뢰브 감독과 선수 모두 칼을 갈며 결전을 준비 중이다.
모스크바(러시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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