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득점 패배 보이던 추가시간
‘손흥민 존’ 감아차기 벼락 슛
대회 첫 득점에도 환호 못 해
실낱같은 희망 남은 독일전
“죽기살기로 끝까지 해볼 것”
‘손흥민 존’은 월드컵에서도 통했다.
한국과 멕시코의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2차전이 벌어진 24일(한국시간) 로스토프 아레나. 한국이 0-2로 뒤진 상황에서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 애간장을 녹이던 후반 추가시간에 손흥민(26ㆍ토트넘)은 페널티 박스 바깥 오른쪽 모서리 부근에서 공을 잡은 뒤 가운데로 치고 들어가다가 대포알 같은 왼발 슈팅을 날렸다. 그가 평소 가장 좋아하는 위치로 여기서 슈팅을 감아 차면 상대 골키퍼가 꼼짝 못하는 골문 구석으로 꽂힌다고 해서 ‘손흥민 존’이라 불리는 곳이다. 멕시코의 철벽 수문장 기예르모 오초아(33)가 몸을 날렸으나 볼은 그대로 그물을 갈랐다. 영국 BBC는 “환상적이다”고 극찬했고 소속 팀 토트넘도 공식 SNS를 통해 “굉장히 아름다운 골”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손흥민은 오른손에 잠깐 키스를 했을 뿐 화려한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았다. 재빨리 하프라인으로 달려가 경기를 재개하려 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알제리와 2차전 때 만회골을 넣고 웃지 못했던 모습과 같았다. 그러나 동점골은 끝내 나오지 않았고 그는 또 고개를 숙였다.
4년 전 대표팀의 막내였던 손흥민은 브라질월드컵 벨기에와 마지막 경기에서 0-1로 패한 뒤 그라운드에서 통곡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먼저 후배 황희찬(22ㆍ잘츠부르크)의 어깨를 두드렸고 페널티킥을 허용한 선배 장현수(27ㆍFC도쿄)를 안아줬다. 그러나 방송 인터뷰에서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원정 월드컵을 관전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경기 뒤 라커룸을 찾자 또 다시 흐느꼈다.
손흥민은 “대표팀에 저보다 어린 후배들이 있어 제가 위로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죄송스런 마음에 눈물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손흥민은 유효슈팅 0개에 그쳤던 지난 18일 스웨덴과 첫 경기 때와 확실히 달랐다. 역습 때마다 빠른 발을 활용해 멕시코 수비를 흔들었다. 그는 이날 슈팅을 9개 날렸고 그 중 2개가 유효슈팅(골문으로 향한 슈팅)이었다. 팀에서 황희찬(47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41회 전력질주를 했다. 33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후반 중반 이후 양 팀 선수들 발은 눈에 띄게 무뎌졌고 손흥민도 체력이 뚝 떨어졌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득점포가 너무 늦게 터진 게 야속할 뿐이었다.
손흥민과 한국 축구의 월드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은 27일 오후 11시 카잔에서 독일과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 동료들과 격돌한다. 한국의 16강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어디까지나 산술상의 확률일 뿐이다.
팬들은 16강이나 승패를 떠나 독일과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원한다. 손흥민도 “실망스럽고 기가 죽어 있고 자신감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나라를 대표해서 하는 경기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잘하고 못하고 떠나 죽기 살기로 끝까지 해보고 결과는 받아들이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축구 팬들은 “손흥민이 만든 이번 대회 한국의 첫 득점이 부디 마지막 득점은 아니기를. 그리고 이번에는 그가 골을 뽑아낸 뒤 마음껏 웃으며 포효하기를” 기대한다.
로스토프나도누(러시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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