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中농업과학원 참관 뒤 “탄복”
답보 상태 못 벗어나는 北 농업생산성
인센티브 확대 ‘동기 부여’도 무소용
전문가 “자본ㆍ기술 없는 제도 역부족”
北, 기근 탈출 위한 中 벤치마킹 채비
“당신들이 이룩한 훌륭한 연구 성과에 깊이 탄복합니다. 김정은. 2018. 6. 2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중 기간인 20일 중국농업과학원 국가농업과학기술혁신원을 참관한 뒤 방명록에 친필로 남긴 글이다. 다음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방문한 중국농업과학원이 “도시 생활에 현대 농업을 전면적으로 융합시키고 도시의 살림집, 사무실, 주민지구 등의 공간을 녹색화하기 위한 기술과 방법들을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시의 건물 및 시설들에서 화초와 남새를 재배하고 농업의 공업화를 실현하기 위한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연구 및 보급하는 중점시범기지”라고 소개하면서다. 김 위원장은 이곳을 “진지하게 료해(파악)”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 건 북한의 낮은 농업 생산성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201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약 477만톤이다. 김 위원장 집권 첫해인 2012년 생산량(약 463만톤)보다 고작 2.9% 많은 양이다. 2013년에는 약 472만톤을, 2014년엔 약 500만톤을 각각 생산하며 어느 정도 성장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2012년 생산량이 예년 대비 하락한 상황이었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생산성 향상으로 결론 내기는 어렵다.
이에 따른 기근도 심각한 상황이다. 4월 자유아시아방송(RFA)은 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2018 세계 식량 위기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북한 주민이 10명 중 4명 꼴로 기근에 시달렸다고 보도했다. 전체 주민 약 2,500만명 중 1,050만명이 굶주렸다는 뜻이다. 앞서 3월 FAO는 북한이 올 한해 수입 또는 국제 지원을 통해 메워야 할 식량 부족량이 46만톤에 달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 당국이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김 위원장이 2012년 6월 28일 발표해 ‘6ㆍ28 방침’이라 불리는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이 생산성 향상을 위한 대표적 조치다. 경제 주체의 기술력과 능력, 즉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제공이 골자인데, 주민들로 하여금 생산성 향상 동기를 갖도록 하기 위해 고안됐다. 국제 사회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목적으로 농업 개발 구역을 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개혁 조치가 효과를 봤다고 하긴 어렵다. 답보 상태인 식량 생산량만 봐도 그렇다. 김영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2일 “문제는 돈”이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혁신적 제도를 도입한들, 우수한 농기계나 비료, 종자 등 물적 토대가 없으면 제도가 제대로 굴러가겠냐는 것이다. 획기적 성과를 가져올 고도의 과학 기술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교육, 연구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북한이 자력갱생을 외치곤 있지만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자체 조달 가능한 자본에 한계가 있다. 중국농업과학원 참관을 두고 대규모 투자 유치나 협력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영훈 연구위원은 월간 ‘북한 경제 리뷰’(한국개발연구원 발간) 2017년 12월호 기고를 통해서도 “‘자본 부족과 개혁 부진의 함정’으로부터 북한 경제와 농업이 탈출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들여와야 할 외국 자본으로는 생산 요소나 투입재 등 물적 요소뿐 아니라 생산 기술 등을 포함한 무형의 자본도 있다”고 제언했다. “과거 유엔개발계획(UNDP)이 실시했던 ‘대북 농업 복구 및 환경 보호 계획(AREP)’이, 북한이 국제사회와 협력해 농업 농촌 복구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계획 수행에 필요한 국제 자본을 유치하는 방식으로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협력 방식일 수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식량 위기 극복과 농업 발전을 위한 노력’이라는 제목의 정세론 해설 기사에서 중국농업과학원을 “농촌을 진흥시키기 위한 과학기술 지원 행동을 과학기술 사업의 기본 고리로 틀어쥐고 기술 결합과 성과 도입으로써 농촌을 적극 뒷받침할 계획”을 가진 곳이라고 칭찬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효율 높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물 절약 재배 방법이 도입되고 있으며, 수확고가 높은 새로운 벼 품종이 육종됐다”고도 했다. 중국의 혁신적 조치들을 모델로 삼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북한이 대미 비핵화 협상에 나선 건 경제 발전 노선을 걷겠다는 결심에서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계속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스스로가 “깊이 탄복”할 만한 성과를 내야 한다. 관건은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만한 물적 토대를 구축할 수 있느냐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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