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美 보수정권 정책에 영향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저명 보수 칼럼니스트이자 정치평론가인 찰스 크라우트해머가 2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68세.
워싱턴포스트(WP)는 고인의 아들(대니얼 크라우트해머)을 인용, 그가 소장암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크라우트해머도 WP에 실린 공개편지에서 “내 싸움은 끝났다. 나는 후회 없이 삶을 떠난다”고 전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잘 알려진 크라우트해머는 1950년 3월 뉴욕 맨해튼에서 유대인 망명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 때 캐나다로 이주해 몬트리올에서 자란 그는 하버드 의대에 입학한 1972년 수영장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14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서도 학업을 손에서 놓지 않은 덕분에 예정대로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일하며 조울병을 연구하던 그의 삶은 1978년 지미 카터 행정부의 보건복지부에서 정신의학 연구 업무를 맡으면서 180도 달라졌다. 월터 먼데일 당시 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로 잠시 일한 그는 미국 잡지 뉴리퍼블릭과 타임에 글을 기고하면서 칼럼니스트로 변신했다.
이후 워싱턴포스트에 합류해 1987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2006년에는 파이낸셜타임스(FT)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평론가’로 선정됐다. 크라우트해머의 글은 냉소적인 표현과 풍자적인 유머, 날카로운 지성으로 유명하다고 로이터 통신은 평가했다. 특히 매파적 세계관과 보수적 사고는 역대 미국 보수 정권의 대외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열렬한 옹호자이자 신념에 찬 반공주의자였던 크라우트해머는 '레이건 독트린'이라는 용어를 널리 알렸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 등 중동 개입을 적극 지지했다. 반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해선 '사회민주주의적 어젠다'를 내세운다는 이유로 대립각을 세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사기꾼’, ‘도덕적 수치’라고 맹비난을 퍼부으면서도 파리기후협약 탈퇴나 보수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 임명에 대해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별세 소식에 미 정치권에서는 추모사가 잇따랐다. 부시 전 대통령은 “그의 글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면서 “그의 목소리가 정말 그립겠지만, 그의 생각과 가치는 영원히 우리나라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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