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9개 은행 조사 결과
부당한 금리 적용 다수 적발
은행에 부당 이자액 환급 지시
은행 “일부 사례로 전체 매도”
지난해 연봉이 5% 넘게 인상된 직장인 김모씨는 대출금에 대해 ‘금리인하 요구권’을 행사하려고 은행을 찾았다가 기분만 상했다. 소득이 증가하면 돈을 못 갚을 위험이 줄어드는 만큼 이를 반영해 대출금리를 깎아주는 게 원칙인데, 해당 은행은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금리 인하분만큼 김씨가 받아온 우대금리 혜택을 줄인 것이다. 김씨는 부당하다고 따졌지만 은행은 “내규에 따른 조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은행들이 부당한 대출금리 산정으로 소비자에 피해를 준 사실이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드러났다. 대출금리는 은행이 시장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나, 은행들이 이를 악용해 최소한의 합리성도 무시한 채 금리를 산정하며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부당하게 걷은 이자를 소비자에게 돌려주도록 하는 한편, 금융사의 불공정 영업행위에 대한 감독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지난 2~3월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등 9개 은행을 상대로 진행한 ‘대출금리 산정체계 점검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일부 은행이 가산금리를 중복 적용해 금리를 올린 사실이 드러나는 등 은행 대출금리 산정 방식을 두고 소비자 불만이 쏟아진 데 따른 것이다.
조사 결과 ‘대출금리 모범규준’에 따라 금리를 합리적으로 매겨왔다는 은행들의 설명과 달리 부당한 방식으로 높게 산정한 금리를 고객에게 적용한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한 은행은 3년 전 연간 8,300만원을 버는 고소득 고객 A씨에게 2년 간 5,000만원을 대출하면서 소득이 전혀 없는 것으로 처리했다. A씨는 연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실제보다 높게 계산돼 가산금리가 0.5%포인트 부과됐고, 그 결과 대출기간 동안 이자 50만원을 추가로 내야 했다.
고객이 담보를 제공했는데도 은행 직원이 전산에 담보가 없다고 입력해 대출금리가 높게 매겨진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3월 담보대출 3,000만원을 신청한 개인사업자 B씨는 이 탓에 신용위험이 높은 대출자로 취급되면서 정상적 수준(1.0%포인트)보다 2.7%포인트나 높은 3.7%의 가산금리를 적용 받았다. B씨가 지난달까지 추가로 물어야 했던 이자는 96만원이다.
영업점 직원이 전산상으로 산출된 대출금리(9.68%)를 이유 없이 무시한 채 내규상 최고금리(13%)를 부과한 사례도 있었다. 신용도 상승으로 금리 인하를 신청한 고객에게 다짜고짜 우대금리를 축소해 금리 인하를 무마한 사례도 나왔다.
은행들은 금감원의 조사 결과 발표를 두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한 대형은행 임원은 “금감원이 일부 예외적인 사례를 갖고 마치 은행들이 모든 대출금리를 제멋대로 매긴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진석 금감원 국장은 “대출금리 산정체계를 합리적으로 바로잡자는 취지”라며 “이번 적발 사례가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긴 하나, 그렇다고 고객에게 손해를 끼친 행위가 면죄부를 받을 순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점검 결과 부당하게 이자를 더 걷은 것으로 밝혀진 은행에 대해 자체 조사를 거쳐 소비자에게 환급하라고 지시했다. 또 은행들이 소비자에게 금리산정 근거를 자세히 제시하도록 했다. 기준금리와 가산금리 합만 소비자에게 알리던 것을 앞으론 항목별 우대금리 내역까지 함께 설명하도록 한 것이다. 고객 입장에선 보다 적극적으로 금리 재산정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전망이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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