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이철성 경찰청장 후임으로 민갑룡 경찰청 차장이 내정됐다. 10년 넘게 수사권 조정 등 경찰 내 각종 현안에 이론가 역할을 도맡아온 인사다. 민 후보자를 두고 경찰 내부에서는 “충분히 예상했고, 당연한 결과”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거기에는 현 정권의 검경 수사권 조정 작업과 관련한 역사와 맥락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경찰 개혁에 있어 현 정부와 잘 소통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전문가)로 인정 받았다는 것도 포함된다.
하지만 그만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무엇보다 초고속 승진이 눈에 밟힌다. 민 후보자가 치안감이었던 게 작년이었으니, 치안정감을 거쳐 최고계급인 치안총감까지 오르는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 그의 ‘꽃길’이 혹시나 ‘정권 코드에 자신과 조직을 맞춘 노력’의 대가가 아니었을까 의심하는 눈초리다.
조만간 열린 청문회만 거치면 민 후보자는 11만 명이 넘는 전국 경찰관의 수장이 된다. 혹독한(?) 검증이 예상되지만, 그 단계에서 낙마한 경우도 아직은 없다. 어차피 될 거라면 차기 경찰 수장에게 미리 3가지 정도 소소하게 당부를 전하고자 한다.
“들어라.” 민 후보자와 일했다는 한 중간 간부는 최근 “같이 식사를 하면서 말 한마디 못할 때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한 번 회의를 하면 몇 시간은 각오해야 한다”거나 “본인 생각을 말하는 데 대부분 회의 시간을 보낸다”는 등 불만을 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민 후보자에게는 ‘현장 경험 부족’의 꼬리표가 달려 있다. 전남 무안경찰서장, 서울 송파경찰서장을 제외하고 정책부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물론 그는 서서 보고를 받고 일하는 걸 즐긴다고 한다). 그만큼 현장의 얘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적었다. 이제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찾아 들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물어보자.” 대부분 이론가의 치명적인 약점은 ‘현실과 괴리된 책상머리 판단’이다. 이론은 이상과 원칙에 치우칠 때가 많다. 전쟁드라마 ‘밴드오브브라더스’의 윈터스 대위가 막 침투하고 복귀한 부하들에게 강 건너 적진을 또 다시 넘어가라는 상부 지시가 있었다면서 “했다고 보고를 할 테니 쉬어라”고 한 장면은 이들에겐 경을 쳐야 마땅할 얘기다. 듣기로는 민 후보자 역시나 원칙을 누구보다 중시한다고 한다. 원칙은 지켜지는 게 마땅하지만, 조직에는 원칙만큼이나 중요한 그들의 사정이 있다.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정을 물어본 뒤 솔직한 내심을 끄집어 내야 한다.
“현장이 바로 경찰이다.” 리더에겐 하고자 하는 일의 명분을 세우고, 착수할 타이밍을 찾는 능력이 필수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손과 발이 될 조직원 설득이다. 누군가는 정부가 마련한 밑그림이 곧 발표될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민 후보자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꼬집는다. 수사 일선에서는 실제 ‘현장 패싱’을 호소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현 정부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한다고 인정을 받은 만큼, 현장을 가장 잘 챙기고 이해한다는 청장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서류상 현장과 실제 현장이 천지 차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경찰청 9층 엘리베이터에 내려 청장실로 가다 보면 벽에 걸린 역대 경찰청장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 그냥 지나치지만, 괜한 호기심에 잠시 멈춰 설 때가 있다. 참모들이 청장실에 들어가면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고 블랙홀로 불렸다는 ○○○. 지금도 일선 경찰들이 역대 최악으로 꼽는다는 ○○○. 뇌물 받아서 감방 신세를 졌다는 ○○○ 등등. 저들 중에 과연 진심으로 경찰 역사에 자랑으로 내밀 청장은 몇이나 될까. 위만 바라보다 청장이 됐고, 위만 바라보며 조직 내부를 망가뜨린 청장은 또 얼마나 될까. 민 후보자는 나중에 어느 쪽이 될까, 지금으로선 짐작 못하겠다.
남상욱 사회부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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