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차 방중 기간 정상국가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킴으로써 유엔을 비롯한 다자무대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ㆍ미ㆍ중 3국과의 연이은 양자회담을 통해 국제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데 이어 이번 방중에선 보편적 정상외교의 ‘프로토콜’(외교규범)을 따름으로써 주변국에 국한된 북한 외교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장후이즈(張慧智) 중국 지린(吉林)대 동북아연구원 부원장은 20일 김 위원장의 3차 방중에 대해 “6ㆍ12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정권 실세들을 대거 이끌고 방중하면서 이를 즉각 공개한 건 공고한 정권 장악력과 함께 국제 외교무대에서의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라며 “앞으로 외국 정상과의 회담이나 다자간 국제회의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몇몇 우호국가에 한정되고 경호ㆍ안전에 집착한 비밀주의로 일관했던 김일성ㆍ김정일 집권기와는 다른 외교를 펼칠 것이란 얘기다.
이런 평가와 전망은 무엇보다 김 위원장 방중이 거의 실시간으로 공개된 데 기인한다. 이는 서방 국가에서야 일반적인 일이지만 북한 외교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가 이번 방중은 사실상 김 위원장 집권 후 첫 ‘공식’ 해외순방 의미도 크다. 그는 경제사령탑인 박봉주 내각총리와 군부 핵심이자 북미 회담 배석자인 노광철 인민무력상을 대동, 사회주의 형제국가 사이의 전통인 당대당 교류 못잖게 정상국가 간 경제ㆍ군사분야 협력채널 구축 의지를 보여줬다.
김 위원장이 제공받은 철통 경호와 환영행사 및 만찬 등 전반적 의전은 1차 방중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엔 ‘비공식 방문’이란 꼬리표가 없어 의미가 한층 커졌다. 그가 부인 리설주 여사를 대동한 것이나 리 여사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 ‘퍼스트레이디 외교’를 펼친 건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김 위원장이 귀국 직전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한 것도 정상국가 지도자로서의 행보로 읽힌다.
주목되는 건 공세적이고 실용적인 광폭 행보가 어디까지 펼쳐질 것인지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국제무대 등장을 예고한 뒤 지금까지 총 6차례 남북ㆍ북미ㆍ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모두 그가 먼저 제안했고 결과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 논의를 ‘되돌릴 수 없는’ 국제사회의 핵심의제로 못박았다. 또 6자회담 참여국이면서 한발 물러서 있는 일본ㆍ러시아의 러브콜도 끌어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개별국가와의 만남이란 한계가 뚜렷하다.
이 때문에 9월 말 미국 뉴욕에서 열릴 유엔총회 참석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유엔총회 참석이야말로 북한과 김 위원장이 명실상부한 국제사회 일원으로 인정받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물론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진전 여부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앞서 9월 초 김 위원장이 러시아 초청으로 참석할 동방경제포럼도 주목할 만하다. 예정된 북러 정상회담 외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정상들과 연쇄 양자회담을 갖는다면 다자 외교무대 데뷔전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방중 마지막 날인 이날 첨단농업과 교통인프라 관련 시설을 시찰한 뒤 오후 5시(현지시간)쯤 전용기 ‘참매1호’를 이용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시 주석과의 오찬회동에선 전날과 마찬가지로 “북한과 단결ㆍ협력해 함께 미래를 개척할 것”(시 주석), “북중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김 위원장) 등 밀착관계를 과시했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3차 방중 공개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 외교가 한 단계 도약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라며 “경제 우선주의를 표방한 김 위원장 입장에선 국제사회의 투자 유치를 위해서라도 다자무대에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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