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틴키의 푸른 하늘에는 당분간 고요한 새소리 만이 잔잔하게 흐를 예정이다. 독일 대표팀의 구령소리로 가득 찼던 그 곳에는 때 지난 축구화 자국 만이 남아있다. 독일은 멕시코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 급히 계획을 수정해 19일(현지시간) 소치에 입성했다. 소치는 스웨덴과의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이 펼쳐지는 장소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독일은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만 한다. 지난 대회 우승에 도취돼 스스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지난 날과는 다른 모습 말이다.
멕시코에게 0-1로 패한 뒤 독일 대표팀의 사기는 바닥을 뚫고 지하실까지 떨어져 있다. 100ha(1㎢)에 달하는 드넓은 운동장,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숙소, 모스크바 시내 남동쪽으로 40㎞ 떨어져 있는 안정적인 훈련 환경까지. 이런 천혜의 요새를 버리고서 일찌감치 소치로 ‘야반 도주’한 이유는 그곳에 남아있는 좋은 기억 때문이다. 독일 대표팀은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출전 당시 소치에 베이스캠프를 차렸고 우승을 차지했다. 독일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치에서 좋은 기운을 받으려고 한다.
멕시코 전 다음날인 18일 라인하르트 그린델 독일축구협회장은 독일 숙소를 방문했다. 독일은 외부로 향하는 문을 걸어 잠그고 내부 결속을 다졌다. 훈련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했다.
2014년 브라질 대회 우승 주역이자 독일 축구의 전설 필립 람(34ㆍ바이에른 뮌헨)의 기자회견도 갑자기 취소됐다. 독일은 취재진의 쏟아지는 날카로운 질문으로부터 람을 보호하고 싶었다. 취재진들은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전부 허공에 메아리로 남겨놓아야 했다. 왜 뢰브 감독은 평가전에서 실패를 거듭해 놓고도 이를 보완하지 않았나요? 월드컵이 벌써 시작됐는데 왜 아직도 수 많은 선수들의 컨디션이 바닥인가요? 왜 요하임 뢰브 감독은 르로이 사네(22ㆍ맨체스터 시티)를 뽑지 않았나요?
스웨덴이 한국에서 1-0으로 승리하자 독일은 더욱 조급한 처지가 됐다. 독일은 사기가 잔뜩 오른 스웨덴과 2차전에서 맞붙어야 한다. 월드컵 우승국이 다음 대회에서 부진한다는 ‘우승국 징크스’가 어쩌면 독일을 덮친 걸 지도 모른다. 조별리그에서 K.O. 당하지 않으려면 이 경기를 무조건 잡아야 한다. 뢰브 감독은 멕시코 전 이후 기자회견에서 “우승국 징크스는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해낼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상태로는 어림도 없다.
제롬 보아텡(29ㆍ바이에른 뮌헨)이 각성한 모습을 보여준 건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독일이 전혀 다른 스타일, 전혀 다른 태도를 가지고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면 무승부가 최대치다. 우리는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앞으로 달려나가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는 좀 더 달려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24일 독일은 2014 동계 올림픽 개최지인 소치에서 일전을 치른 뒤 바로 베이스캠프로 복귀한다. 과연 소치에서 돌아오는 독일 대표팀의 표정이 울상일지, 안도로 가득할지 지켜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무니르 지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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