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경제 곳곳에 경보음이 울리고 있는 가운데 대출금리가 2%포인트 오르면 전체 가계대출의 10%는 상환이 어려워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리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전셋값도 20% 정도 떨어지면 임대가구 5곳 중 1곳이 빚을 내야 보증금 반환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2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안정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금리 상승은 먼저 가계에 큰 부담을 줄 전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이나 보유 자산으로 빚을 갚기 어려운 ‘고위험가구’는 지난해 3월 말 기준 34만6,000가구로, 부채가 있는 전체 가구의 3.1%를 차지했다. 2016년 3월 말(31만2,000가구) 이후 1년 새 3만4,000가구나 늘었다. 고위험가구는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DSR) 40% 초과와 자산평가액 대비 총부채비율(DTA) 100% 초과 모두에 해당하는 가구다. 가계가 보유한 자산을 모두 처분해도 빚을 갚을 수 없는 사실상의 ‘파산 가구’다.
한은의 분석 결과 지난해 3월 말을 기점으로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고위험가구 비중은 전체 부채가구의 3.5%, 2%포인트 오르면 4.2%로 각각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수로 따지면 대출금리 1% 상승 때 4만5,000가구, 2% 상승 때 12만가구 안팎이 추가로 ‘파산’하는 셈이다. 고위험가구 증가는 소득 2,3분위(하위 20~60%)에서 두드러져 중ㆍ저소득층이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또 금액 기준으로 고위험가구 부채가 전체 가계빚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금리 1%포인트 인상 때 7.5%, 2%포인트 인상 때 9.3%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점인 지난해 3월 가계대출 평균금리가 연 3.43%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출금리가 연 5%대 중반으로 치솟을 경우 전체 가계대출의 10% 가량이 갚기 어려운 상황을 맞는 꼴이다.
저금리 시기에 전세를 끼고 집을 구입하는 이른바 ‘갭투자’가 만연했던 부동산 시장도 심상치 않다. 보고서는 20년 전 외환위기에 준하는 상황을 가정해 전셋값이 20% 급락한다고 가정하고 임대가구의 전세보증금 반환 여력을 분석했다. 그 결과 금융자산 보유분으로 보증금 반환이 가능한 가구는 78.4%로 나타났다. 나머지(21.6%)는 빚을 내야만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임대가구의 7.1%는 거주 주택 담보대출로도 부족해 고금리 신용대출 등을 받아야 보증금 상환이 가능한데, 이 중 5분의 1은 DSR 비율이 이미 40%를 넘어 추가 대출 여력이 부족하다. 이러한 ‘위험 집주인’이 전체 임대가구의 1.5%, 숫자로는 4만가구를 넘는다.
고객 자금을 관리하는 금융기관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시중금리가 상승하면 금융기관의 주요 자산인 채권가격이 떨어지면서 자본건전성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실제 한은이 국내 시중은행, 지방은행, 특수은행 등 17개 은행을 대상으로 시중금리 상승을 가정해 자본건전성 지표인 총자본비율(위험가중자산 대비 총자본ㆍ지난해 말 15.2%)을 분석한 결과 금리가 3%포인트 오르고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경우 일부 은행의 총자본비율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치(9.875%)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2금융권에선 채권 보유 비중이 높은 보험사와 증권사가 금리 인상에 따라 자본비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