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막을 올리는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엔 귀한 손님이 온다. 글렌 매트록(62). 펑크록의 전설로 통하는 영국 밴드 섹스 피스톨스 원년 멤버이자 베이시스트다. 이제 막 첫발을 떼려는 음악 축제에 매트록은 출연을 자청했다. 지구촌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 그것도 남북의 접경지인 비무장지대(DMZ)에서 평화를 위한 행사가 열린다는 말을 페스티벌 조직위원인 스티븐 버드로부터 듣고 난 뒤다.
매트록은 24일 강원 철원 DMZ 고석정에 마련된 무대에 선다. 그의 첫 내한 공연이다. 리처드 막스 등 해외 음악인들이 불안한 한반도 정세를 이유로 방한을 꺼린 것과는 정반대 행보다.
매트록은 한국일보와의 단독 이메일 인터뷰에서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냉전 벽 허물기에 나선) 남북의 중요한 과도기에 음악인으로서 서방의 연대를 보여 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도 뉴스로 지켜봤다. 생각을 묻자 펑크록 스타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분명 전과는 다른 시기다. 다만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 중 누가 더 믿을 만한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무능한 여왕’ 꼬집은 저항의 상징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섹스 피스톨스는 영국에서 파격과 저항의 상징이었다. 밴드는 1977년 낸 1집 ‘네버 마인드 더 볼록스’의 수록 곡 ‘갓 세이브 더 퀸’에서 무능한 영국 왕실을 꼬집어 영국을 발칵 뒤집었다. 외환위기와 보수적인 계급 질서 때문에 미래가 불안했던 청년의 좌절과 분노가 극에 달한 시기였다.
애초 ‘갓 세이브 더 퀸’의 제목은 미래가 없다는 뜻의 ‘노 퓨처’였다. ‘갓 세이브 더 퀸’으로 제목을 바꿔 곡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에 대해 매트록은 “엘리자베스 2세 즉위 25주년과 곡을 낸 시기가 비슷했고 밴드의 화두와 맞았기 때문”이라고 옛일을 들려줬다. ‘갓 세이브 더 퀸’은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25주년을 기념하는 주에 발표됐다. 여왕을 곡 제목에 직접 언급하며 ‘영국이 꿈꾸는 미래는 없다’고 직격탄을 발사한 것이다. 이들은 당시 실업자의 편에 서 ‘아나키 인 더 유케이’를 외치기도 했다. 매트록은 섹스 피스톨스 1집을 낸 뒤 불화로 팀을 떠났지만 이후 리치 키즈 등의 밴드를 꾸려 펑크 음악을 꾸준히 선보였다.
배곯으며 데뷔한 ‘블루칼라 록스타’매트록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동을 위해 새 가치를 요구한다(We demanded a new deal for working life)’는 글이 담긴 현수막이 걸린 곳에서 노래하는 사진을 올렸다. 그의 음악과 무대는 늘 노동자를 향했다. 매트록은 공장 일꾼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데뷔 전엔 옷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섹스 피스톨스 1집으로 성공하기 전엔 돈이 없어 배를 곯았고 공연장을 빌리지 못해 거리에서 연주해야 했다. “사회의 지도자들에 대한 관심을 거두면 안 된다”는 노동자 계급의 로커가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에 의한 노래를 부르는 이유다.
매트록은 다음달 24일 새 앨범 ‘굿 투 고’를 낸다. 그는 “멋진 음악가들과 곡을 만들었다”며 “지금의 나를 보여 주는 12곡이 실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미국 펑크 음악의 대부인 이기 팝 등과 협업한 바 있다.
매트록은 20일 입국했다. 그는 23일 ‘평화 열차’를 타고 DMZ로 향한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170여분을 달려 한국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은 철원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여정이다. 매트록은 첫 한국 공연에서 국내 펑크 1세대 밴드인 크라잉넛과 협연한다. 이를 위해 매트록은 22일 서울 홍대 근처에서 크라잉넛과 사전 연습도 한다. 매트록과 크라잉넛은 섹스 피스톨스의 대표곡 ‘아나키 인 더 유케이’와 크라잉넛의 대표곡 ‘말 달리자’ 등을 함께 연주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짝이는 재킷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는 매트록은 특별 무대도 준비하고 있다. DMZ 일대에서 열릴 축제엔 가수 강산에, 이승환, 기타리스트 이상순,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새소년 등이 출연한다.
“지금은 평화를 위해 ‘계속 밀어붙여야(Keep on pushingㆍ매트록 밴드가 낸 노래 제목)’ 하는 시기다. ‘계속 밀어붙여야’는 이 축제와 현 남북 상황에 딱 어울리기도 하고 아주 좋은 곡 제목이기도 한데 무대에서 연주할 수도 있다. 공연에 와서 확인해 보면 깜짝 놀랄 거다, 하하하.”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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