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XX들 때문에 피해본 사람만 몇 명이야!”
일부 승객이 심한 욕설을 퍼붓고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지하철 타기 행동’(집회)이라는 이름 아래 한 줄로 지하철을 타고 내리길 반복하는 휠체어 장애인 30여명을 향해서다. 장애인을 바로 앞에 두고 “누가 장애인 되래” 따지는가 하면, “사람이 죽었습니다”라고 집회 취지를 설명하는 참석자에게 “누가 죽으랬어” 반문하기도 했다. 최근 서울 지하철1호선 신길역에서 볼 수 있었던 아침 풍경이다.
이날 휠체어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지연시켜가며 집회를 한 건 지난해 발생한 신길역 휠체어리프트 추락 참사를 알리고, 서울시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고 한경덕씨는 지난해 10월 신길역 휠체어리프트를 타려다가 계단 밑으로 추락해 올해 1월 숨을 거뒀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되고 있는 현장 영상을 통해 전해지는 건 휠체어리프트 위험성에 대한 공감이 아닌, 지하철을 지연시키는 장애인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장애인을 향한 비하 발언, 혐오 표현은 일상 속에 난무하고 있다. 당사자 바로 앞에서 장애 자체를 욕하는 건 물론, 방송 프로그램에도 비하 발언이 나오는 실정이다.
신길역 휠체어 집회가 열린 당일 아침엔 코미디언 엄용수(67)씨가 지상파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애인을 비하했다. 엄씨는 이날 대학교 2학년 때 엄지발가락을 잃어 6급 장애인이 된 사실을 언급하며 “장애인 등록을 하자마자 KTX, 항공료가 30% 할인이다” “가만히 앉아서 1년에 1,000만원 번다. 비행기 자주 타면 더 번다”고 말했다. 이에 장애인단체들이 입장문을 내고 “마치 장애인들이 할인혜택으로 큰 돈을 버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있다”라며 사과를 요구하자, 20일 엄씨는 “고의성이 없었고 강의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나온 말실수였다”고 사과했다.
사실 장애인들은 이러한 비하 발언을 일상적으로 겪는다고 입을 모은다. 휠체어를 이용해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 좁은 공간을 이용하면 “냄새가 난다”고 큰소리로 말하는가 하면 “집구석에 있지 왜 불편하게 밖에 나오냐”고 따지기도 한단다. 지체장애인 김모(54)씨는 “최근 날 보고 ‘저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라며 “이런 말을 들은 게 처음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구체적인 행동뿐 아니라 언어적 표현도 규제하고 있다”라며 “장애인 비하 발언은 명백한 위법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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