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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 훈장, ‘고양이 마을’ 이장님이 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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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 훈장, ‘고양이 마을’ 이장님이 된 까닭은

입력
2018.06.2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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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고양이가 된 산고양이가 김봉곤 훈장의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이는 모습. 김 훈장은 "예절 교육 중에 동물 먹이주기 과정이 있다"며 "아이들이 고양이와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말했다.
서당 고양이가 된 산고양이가 김봉곤 훈장의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이는 모습. 김 훈장은 "예절 교육 중에 동물 먹이주기 과정이 있다"며 "아이들이 고양이와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말했다.

“야옹아~ 이리와봐! 맛있는 거 먹자”

툇마루에 앉아있던 김봉곤 훈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훈장님, 그렇게 큰 소리로 야옹이를 부르면 고양이들이 오나요?"

"암요. 오지요. 저 멀리 있던 고양이들도 제 목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옵니다. 에이~ 그렇게 구조망 들고 가봐야 소용 없어요. 내가 부르면 알아서 온다니까."

지난 17일 충북 진천군 문백면에 있는 신선마을 선촌서당. 김봉곤 훈장이 운영하는 이 곳에 서울 둔촌·관악, 경기 수원·안양·부천 등 각지에서 모인 캣맘들과 수의사 등 십 여명이 모였다. 이날 이들이 이 곳에 모인 이유는 선촌서당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할 고양이는 암컷 8마리, 수컷 4마리를 합쳐 총 12마리였다. 그런데 수술을 해야 할 고양이들이 당최 나타나질 않으니 김 훈장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구조망을 들고 나서는 하병길 ㈔한국동물복지표준협회 사무총장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젓더니 다시금 "야옹아~ 어디있냐? 이리와라!"라고 소리치며 마당을 가로질러갔다. 이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한 마리를 빼고 11마리의 중성화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장장 4시간에 걸친 릴레이 수술이었다. 집도는 반려동물 맞춤 수의사 상담 앱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인 펫닥의 이태형 수의사가 맡았다.

예절교육을 하는 훈장님의 서당에 고양이는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김 훈장이 들려준 스토리는 이랬다. 지리산 청학동에서 나고 자란 김 훈장에게 고양이는 아주 친한 친구였다. 김 훈장이 어렸을 땐 농부들에게 쥐를 잡는 것만큼 큰 골칫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집집마다 고양이를 서너마리씩 키웠다고 했다. 놀아줄 장난감이 없으니 상투를 푼 풍성한 머리채가 고양이의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지금 선촌서당을 세운 진천으로 터전을 옮긴 뒤부턴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 그러다 3년 전쯤 15년 지기인 하 총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락사 위기에 처한 고양이를 입양할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고양이 네 마리를 입양했다. 그런데 마당에서 밥을 주며 키우다 보니 서당 주변의 산고양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어울려 지내다 보니 새끼를 낳았다. 그렇게 늘어난 고양이들이 이제 모두 28마리가 됐다. 이날 중성화 수술 역시 선촌서당 고양이의 개체수 관리를 위해 이뤄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곳으로 이주해 올 재개발ㆍ재건축 지역 고양이들과 다투지 않고 잘 어울리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 선촌서당 한 쪽에 마련된 적응 계류장에는 서울 둔촌에서 온 3마리와 경기 안양에서 온 3마리를 합쳐 총 6마리가 이주 적응 중이다. 조만간 안양에선 10마리 정도의 고양이가 더 이주할 계획이다.

선촌서당 고양이 마을 조성 계획이 급물살을 탄건 하 총장이 몸담고 있는 협회에서 길고양이 문제 종합 대책인 ‘캣로드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다. 김 훈장과 서당 식구들이 고양이를 돌볼 수 있고, 꽤 넓은 부지도 확보돼 있으며, 주변에 위협 요소가 없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김 훈장은 하 사무총장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 훈장은 “동물은 원래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였는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이 동물들의 공간을 빼앗고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게 됐다”며 “이렇게 사회적으로 죽어가고, 천덕꾸러기가 돼 가고 있는 동물들을 위해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분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17일 충북 진천군 선촌서당에 임시로 차려진 수술실에서 중성화 수술을 받은 서당 고양이 한 마리가 붕대를 감은 채 '식빵자세'로 쉬고 있다.
17일 충북 진천군 선촌서당에 임시로 차려진 수술실에서 중성화 수술을 받은 서당 고양이 한 마리가 붕대를 감은 채 '식빵자세'로 쉬고 있다.

고양이 마을 조성에 앞장서고 있는 하 사무총장은 갈수록 사회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길고양이 문제에 대해 “캣맘, 즉 민간 영역에서 길고양이들을 돌보다 보니 애니멀 호더를 연상케 하는 고양이 쉼터가 생겨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의료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힘들다”며 “제도를 개선해 공공 영역에서 길고양이의 생명권을 지킬 수 있도록 상황을 개선해야 하며, 캣맘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이곳 선촌서당 고양이 마을을 실질적인 성공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캣맘들은 재개발ㆍ재건축 지역 길고양이의 원거리 이주에 대한 우려가 큰 편이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가 낯선 환경으로 이주하면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고, 이주 공간 역시 고양이들에게 위험한 환경일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촌서당으로 길고양이 이주를 결정한 안양시 캣맘협의회의 이행순 회장은 “처음엔 고양이 마을이 동화 같은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고양이는 자연에서 사람과 더불어 친화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훈장님 말씀을 듣고 동화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며 “앞으로 선촌서당 말고도 전국에 이런 고양이 마을들이 많이 생겨나서 한 마리의 고양이라도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천=글ㆍ사진 김경준 동그람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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