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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구조, 직무와 연관” 이유 의사자서 배제... 유족들 “위기때 누가 나서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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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구조, 직무와 연관” 이유 의사자서 배제... 유족들 “위기때 누가 나서겠나”

입력
2018.06.23 09: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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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상자 지정 안돼 유족들 눈물

세월호 구조 작업한 민간잠수사

밀양화재 환자 돕다 숨진 의료진

“지정 해달라” 靑 국민청원 올라와

#경찰 등 도움 없인 신청 어려워

CCTV 영상 등 증인ㆍ증거 필요

업무 외 별도 시간에 작업 진행

협조 없을 땐 자료 확보 힘들어

#의사상자 결정에 60일 걸려

심사 중엔 본인이 치료비 부담

보상 개선 개정안 등 제출 불구

“직무외 행위 탄력적 해석 필요”

김승환 밀양 세종병원 화재 희생자 유족협의회장은 1월 26일 화재로 숨진 의료진의 의사자 지정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당시 화재로 숨진 46명에는 1층 응급실 당직의사 민현식, 2층 간호사 김점자, 2층 조무사 김라희 등 3명이 포함돼 있다. 유족협의회 측은 3명 모두 환자들의 대피를 돕거나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들의 의사자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는 이들을 의사자로 지정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1월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 희생자 유족협의회측은 당시 현장에 있던 의료진 3명에 대한 의사자 지정 신청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들의 활동을 입증할 자료가 충분치 않아 애를 먹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월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 희생자 유족협의회측은 당시 현장에 있던 의료진 3명에 대한 의사자 지정 신청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들의 활동을 입증할 자료가 충분치 않아 애를 먹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다. 현행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사상자법)’에 따르면 의사상자는 ‘직무 외의 행위로서 타인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의 급박한 위해를 구제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을 가리킨다. 소방관, 경찰관, 군인 등의 경우에는 유공자로 지정받고 그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결국 자신의 직무를 하다 숨질 경우 의사자 선정에서 빠진다는 뜻으로, 병원에서 불이 났고, 의료진이 환자를 보호하려 한 것이기 때문에 의사자 대상이 되기 힘들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사고 직후 밀양 문화체육관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를 찾아 헌화, 분향한 뒤 유족협의회 대표들과 만나 (세종병원) 의료진 3명은 직원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다한 것이기 때문에 의사자 선정은 결론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 유족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유족들은 당시 “의사자가 되기 위해 희생한 것은 아니지만 전에 없던 규모의 지진, 대형 화재 등이 잇따라 발생하는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남을 구했는데도 직원이기 때문에 의사자가 되기 어렵다면 과연 누가 나서려고 하겠느냐”고 항의했다. 당시 정부 측은 “3명의 의료진을 의사자로 선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할 계획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사자와 유족이 의사상자 지정 신청해야

자신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을 돕는 의로운 행동에 대한 적절한 대우가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평범한 시민들의 용기와 헌신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기억하려 노력하는지는 그 사회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또 더 많은 의인이 나타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현재 정부가 일반인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는 대표적인 제도는 의사상자 지정이다. 의사상자로 지정되면 보상금, 의료급여, 교육, 장례 제사, 취업, 국립묘지 안장 등의 지원이 이뤄진다.

의사자 선정을 위해서는 유족이 관련 서류를 구비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신청서를 내면 시장, 군수, 구청장이 이를 보건복지부 장관과 시도지사에게 보고하고, 복지부는 5일 이내에 복지부 산하 ‘의사상자심사위원회’에 그 사항을 올려 60일 안에 심사, 결정한다. 심사위원회는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을 위원장으로 한 정부 위원 6명, 법학ㆍ의학ㆍ사회복지ㆍ응급구조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 위원 9명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일하다 사람 구하면 의사자 될 수 없다?

가장 많은 지적이 나오는 부분은 의사자 선정에 있어 의로운 행위 자체보다 직무 연관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들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활동에 나섰던 많은 민간잠수사가 의사상자 지정을 신청했지만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활동 비용을 받았기 때문에 ‘직무 외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활동에 나섰던 많은 민간잠수사가 의사상자 지정을 신청했지만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활동 비용을 받았기 때문에 ‘직무 외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당시 정부는 세월호 구조 작업을 돕다 사망한 민간잠수사 고 이민섭(당시 44세)씨의 의사자 지정 신청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수난 구호 비용을 지급받고 잠수에 참여했기 때문에 직무 외 수행으로 사망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씨 외에도 의상자 지정 신청을 했던 민간잠수사 22명도 같은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산업재해 신청도 할 수 없는 민간잠수사 상당수가 부상과 트라우마에 시달려 왔고, 작업 후유증으로 현업에 복귀하지 못해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직무 외 행위’에 대한 탄력적 해석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졌다.

2015년 11월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화재 때 동료들을 대피시키다 유독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화기감시자 유모(당시 50세)씨는 의사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유씨는 불붙은 배 안으로 들어가 호루라기를 불며 동료들을 대피시켰지만 ‘화기감시’라는 직무를 수행하다 숨졌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찰관, 소방관 등 공무원들은 직무와 연관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법에 의해 보상받는 점을 감안할 때 민간인들에 대해서는 의사상자 인정 심사 과정에서 직무 외 범위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심사 기간 치료비는 본인이 알아서 해야

의사상자 신청 뒤 결정될 때까지 60일이라는 시간이 길어서 부상 등 치료비 마련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국회에는 의사상자가 부상 치료를 위해 의료비 지원을 신청하면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이를 납부하도록 보상 체계를 개선하는 내용의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대표발의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제출돼 있다. 단 이를 악용할 경우, 지자체가 지원 비용을 환수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7월부터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의사상자로 인정받거나 이를 도와준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정부 지원 비용을 환수하도록 하는 규정만 있었지만 별도의 벌칙을 받도록 강화한 것이다.

또 현재 60일로 돼 있는 심사 기한을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 한 30일 이내에 심사,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대표발의 장정숙 바른미래당 의원)도 제출돼 있다.

‘초인종 의인’ 고 안치범씨는 자신이 살던 5층 건물에 불이 나자 119에 신고한 뒤 다시 불 속에 뛰어들어 21가구의 초인종을 누르고 소리를 지르며 잠자던 이웃을 깨웠지만 정작 자신은 유독가스를 마시고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안치범씨를 언급하며 “우리를 지키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령들이 모두 우리의 이웃이었고 가족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고 말했다. 인터넷 캡쳐
‘초인종 의인’ 고 안치범씨는 자신이 살던 5층 건물에 불이 나자 119에 신고한 뒤 다시 불 속에 뛰어들어 21가구의 초인종을 누르고 소리를 지르며 잠자던 이웃을 깨웠지만 정작 자신은 유독가스를 마시고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안치범씨를 언급하며 “우리를 지키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령들이 모두 우리의 이웃이었고 가족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고 말했다. 인터넷 캡쳐

의사상자 지정 신청을 위해 당사자나 유족 측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절차가 복잡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초인종 의인’으로 알려진 고 안치범(당시 28세)씨 사례가 잘 보여준다. 안씨는 2016년 9월 9일 새벽 자신이 살던 5층 건물에 불이 난 사실을 알고 119에 신고한 다음 다시 불 속으로 뛰어들어 21가구의 초인종을 누르고 소리를 지르며 잠자던 이웃들을 깨워 살렸지만 자신은 유독가스를 마시고 쓰러진 채 발견됐고 11일 후 끝내 숨을 거두었다.

당시 안씨의 의로운 행동은 당연히 의사자 지정을 통해 기려야 한다는 여론이 뜨거웠다. 하지만 유족들이 직접 증거들을 찾아 제출해야 한다는 상황이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거셌다. 다행히 서대문구청이 소방서, 경찰서 등의 협조를 얻어 자료를 제출해 의사자로 지정이 됐다. 서대문구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경찰서로부터 사건사고 확인원, 수사종결원, 목격자 진술조서, CC(폐쇄회로) TV 화면 자료를, 소방서로부터 사건사고확인원, 화재 증명원 등을 넘겨받았다. 구 관계자는 “안씨의 경우 여론의 관심이 컸기 때문에 경찰서, 소방서도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줬고 사고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자료가 많았다”라며 “경찰서, 소방서가 소극적으로 나오거나 시간이 많이 흘러 버릴 경우 자료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방서, 경찰서의 협조 없이 신청 불가능

당장 밀양 화재 유족 협의회 측은 밀양시 관계자들과 대책 회의를 열고 경찰서와 소방서를 통해 불이 났을 때 이들 3명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보여줄 자료와 영상을 확보하고 있지만 결과는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밀양시 관계자는 “화재가 발생한 지 6개월이나 지났고 경찰서나 소방서 입장에서는 본래 업무 외 별도 시간을 쪼개 작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화재 당시 병원 건물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복잡한 상황이었고, 경찰과 소방서의 조사가 화재 원인을 밝히고 인명 피해를 파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과연 이들에 대한 자료가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차라리 본인의 신청 없이도 사건 사고를 담당하는 경찰이 의사상자 지정을 주도할 권한을 주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좀 더 의인을 찾고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게 됨으로써 당사자나 유족들의 수고를 덜 수 있고, 심사 과정에서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한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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